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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일본의 매독과 東海道中膝栗毛

by 초야잠필 2022.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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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독은 1492년, 신대륙발견과 함께 구대륙으로 전파된 이후 아주 짧은 시간에 전세계를 휩쓸었는데 동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일본이 비교적 일찍 전파되었고 한국은 상대적으로 이보다 느리다. 전세계를 누비던 세계무역의 확대와 매독의 전파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개항이 상대적으로 늦은 조선이 매독에 상대적으로 늦게 노출된 것은 그런 의미가 크다. 

흥미로운 것은 인류학적 연구에 의해 밝혀진 바로는 일본의 경우, 20세기 이전 매독의 감염률이 엄청나게 높았다는 것이다. 매독은 만성화 되면 여러가지 후유증을 남기게 되는데 그 중의 하나가 뼈에 그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뼈에 남아 있는 어떤 흔적이 매독때문에 생긴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인류학적 연구가 상당히 축적되어 전세계적으로 많은 연구보고가 있었다. 물론 오늘날에는 매독에 걸린다 해도 효과적이 항생물질덕에 조기에 차단되므로 뼈에 그 흔적을 남길 정도까지 이 병이 진행되는 경우는 드물다. 

에도시대의 일본과 조선을 비교하면 매독의 발생률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 필자의 심증이다. 조선시대에도 17-18세기에는 이미 매독이 들어와 있었던 것은 분명한데, 그 발생률이 상당히 낮았다는 것은 오늘날 조선시대 인골에서 매독의 흔적을 찾기 매우 어렵다는데서도 잘 알 수 있다. 반면에 에도시대 인골에서는 매독의 흔적을 찾기가 매우 쉬우며 학자에 따라서는 당시 사람들 중 20-30퍼센트까지 매독에 노출되어 있었다고 보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너무 과대한 계산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필자는 東海道中膝栗毛를 읽으면서 에도시대 일본에 매독 발생률이 왜 그렇게 높았던것인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앞으로 제대로 이야기가 정리되면 이 지면을 빌어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 본다. 

에도시대 주요 간선도로의 여행자에게 숙소를 제공하던 宿場은 사실상의 매독 전파의 온상이나 다름없었다.

<필자 주> 이 주제는 자칫 매우 선정적인 내용이 될수 있어 최대한 조심해서 글을 쓰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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