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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일본의 메이지 이전 교육기관의 상당수는 근대적 교육기관으로 넘어왔는데
이는 일본전통의 보호 같은 한가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밝혔다.
일본은 한국과 같은 "학교" 전통이 약하다.
에도시대 이전 제대로 된 "학교"가 없었다.
헤이안시대에 우리의 국학에 해당하는 것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고대의 학문전통은 중세시기에 사찰의 승려와 귀족들을 통해 전수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바뀐 것은 에도시대부터였다.
막부는 막부학문소 (지금의 유가와세이토: 탕도성당),
각 번은 번교를 만들고
그 아래에는 데라코야가 있어 한국의 성균관-서원(향교)-서당과 유사한 형태의 전근대적 교육제도가 완성되었다.
이 때문에 일본의 경우 "교육의 기원"은 막부학문소, 혹은 번교로 보는 시각이 매우 강하다.
한국은 이보다 훨씬 찬란한 교육제도의 전통이 있는 나라인데
근대화의 와중에 그 많은 수의 학교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조선 근대화의 실패와 식민지시대를 규명함에 꼭 필요한 부분의 하나가
바로 이러한 전근대 교육기관의 실패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고 이 역시 반드시 규명되어야 하는 부분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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