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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번교의 근대교육기관으로 전환의 사례: 요네자와번 흥양관

by 초야잠필 2023.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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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에도시대 번교藩校가 근대교육기관으로 어떻게 전환되었는지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 

요네자와번米沢藩에는 에도시대, 번사藩士를 교육하는 번교가 있었는데 이름을 흥양관興譲館이라 하였다. 

1697년, 공자를 모셔 석전釈奠하는 학문소를 사적으로 설치하였는데 이것이 1776년부터 요네자와번의 공식적 교육기관이 되었다.

공자 제사와 교육 기능을 겸비하였으니 정확히는 우리나라 향교와 유사하다 할 것이다. 


興譲館(こうじょうかん)は、江戸時代の出羽国米沢藩主上杉治憲の命により、上杉綱憲の学問所を再建して成立した藩校である。ここでは主に江戸時代のことについて記載する。

創立・再建
1697年(元禄10年)6月15日に上杉綱憲が以前から孔子を祀る行事である釈奠を行っていた儒臣矢尾板三印の邸宅に学問所を設置、同年11月29日には同じ邸内に釈奠の会場となる聖堂を完成させ、翌年3月22日には綱憲臨席のもとで釈奠が実施されて、以後ここで藩士子弟教育を行わせたが、これが興譲館の前身となる。しかし、米沢藩の財政窮乏により、1724年(享保9年)に藩による釈奠が中止され、以降は矢尾板に代わって藩士子弟教育を行っていた片山家の私的行事として釈奠(自分釈奠)が行われることになる。ただし、歴代藩主の中には釈奠再興を願う者もおり、財政状況が最も悪化していた時の藩主上杉重定も片山家の自分釈奠の際には秘かに供物を贈ったという。

1770年(明和7年)に治憲が釈奠を継承していた儒臣の片山一積を呼んで、勧学についての意見を聴取した上で、藩校設立の必要性を強く認識する。

1775年(安永4年)に奉行の吉江輔長(喜四郎)が頭取、小姓頭の莅戸善政が御用掛に任命され、細工町の片山塾を基に学問所を再建することになった。治憲は「新たに事を取り立てるより、廃れたるを興すは人情いつも平なるものなり」という立場から、学問所に普請を加えて再建する方針をとった。

その後、片山一積と神保綱忠が提学、莅戸善政が総監となり、1776年(安永5年)4月19日に落成した。以後、幕末まで米沢藩の教育機関として機能する。

維新後は旧藩士による私立学校として存続。1886年の中学校令により旧制中学校に指定後、県に移管され山形県立米沢興譲館高等学校へ至る。



메이지유신 후 폐번치현廢蕃置縣이 되어 요네자와 번이 사라졌지만 번의 사무라이를 교육하는 사립학교로 계속 존속하였다. 

1886년, 메이지 정부에 의해 중학교령이 반포되자 구제중학교가 되었고, 현에 이관되어 야마가타현립山形県立 요네자와米沢 고조칸興譲館 고등학교高等学校로 바뀌었다. 

메이지시대에 고등학교가 된 요네자와번 번교 흥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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