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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앞으로 반드시 규명해야 할 것의 하나가
일본 근대학문의 기원이다.
우리는 이것을 에도시대의 난학 정도로 뭉뚱그려 피상적으로 보고 치워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에도시대의 학문수준은 17세기 후반에 들어가면 조선을 확실히 앞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학문이라는 것도 난학만이 문제가 아니다.
심지어는 조선이 자신있어 할 만한 유학-경학 분야에서도 일본은 조선을 확실히 압도하기 시작했다.
이 흐름이 이어진 것이 19세기 메이지시대로 일본 과학은 19세기 말이 되면 이미 유럽의 과학을 거의 추격하여 노벨상이 제정된 초기에는 의학-생리학상 후보로 일본인이 거론될 정도였다.
우리는 인문학도 왜 일본의 학문이 한국의 학문을 그렇게 오랫동안, 해방 이후에도 한국을 압도하고 있었는지 그 기원을 추적하는데 지금까지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근대학문의 기원. 이게 그렇게 간단치 않다. 난학만 들춰봐서도 안 될 일이고, 보다 깊이, 일차사료까지 내려가 파헤쳐야 왜 21세기 초반까지도 한국 학문이 일본학문에서 아직도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필자가 보기엔 조선과 일본의 학문 격차가 발생한 것은 난학만이 문제가 아니고 학문 전반, 심지어는 유학까지도 이미 17세기 후반이 되면 역전이 시작되었고, 19세기 초반에는 학문 전체에서 조선이 일본보다 나은 곳은 하나도 없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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