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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노년의 연구

일제시대 소학교 숫자로 발전을 설명한다?

by 신동훈 識 2025.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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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일제강점기 발전의 근거로 소학교 숫자를 가지고 들고 나오는 것을 보는데

이는 조선후기의 상황을 보면 명백한 조선의 상황에 대한 오독이다. 

우선 한국사는 천년 가까운 과거제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다가 

(정규 시험이 3년에 한번, 그 외에 각종 별시를 치면

거의 매년 한번 꼴로 과거를 해도 응시자가 계속 나오고 급제가가 계속 나오는것을 우리는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과거제 천년 역사라는 것은 쉽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매우 넓은 독서층이 존재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조선후기 보면 신분의 상승이 글을 하느냐, 독서층이냐, 과거를 볼 자격이 있느냐로 주어졌기 때문에 

이미 18-19세기가되면 조선인들 사이에는 "못배운 한"이 정서적으로 머리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18세기 중엽, 신분상승의 욕구가 높은 조선인들에게 술 한 잔 걸치고 물어보면

"못배운 한"을 이야기했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과거를 볼 수 있는 자격이 되는 유학이 곧 양반의 상징인데, 

이 유학이 되면 군역도 빠지고 신분도 바뀌어 팔자가 바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교육에 대한 희구, 

배운자에 대한 선망, 못배운 한, 

그리고 우골탑의 바탕은 일제시대나 해방이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먹고 살 것이 없어 제대로 못 가르칠 뿐이지 

가르치고 배우면 팔자 고친다는 생각은 조선후기, 

특히 18-19세기에는 이미 한국사회에 팽배해 있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의 발전을 소학교 증설 수로 이야기 하는 것이 옳은가? 

식민지근대화론을 전개하는 것은 필자는 어디까지나 학문적 영역이라 

그런 주장을 하는 분들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만, 

소학교 증설수로 발전을 이야기 하는 것은 조선후기 상황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떨어지는 주장이라는 생각, 

지금도 필자는 당연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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