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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노년의 연구

10대조가 유명한 양반이면 우리 집은 명문?

by 신동훈 識 2025.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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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10대조가 유명한 양반이었다고 해도

그 후의 10대가 어떻게 내려오느냐에 따라 

제대로 된 양반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는, 

조상 중에 한명이라도 서얼이 나오면

그 아래로는 죄다 금고로 묶였다. 

이렇게 서얼집안이 되어버리면

6-7대씩 내려가도 여전히 적자의 후손과 비교하면 

그 직역이 차이가 있는 것을 호적에서 볼 수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당신의 조상 10대조가 유명한 선비라는 것이

당신이 곧 양반 후손이라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중간에 한 명이라도 서얼 조상이 섞여 버리면

그 후부터는 대대로 서얼로 묶여 금고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사실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당시의 호적을 확인하는 방법 외에는 없는데

다행스러운 일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조선시대 호적은 대부분 사라져

18-19세기의 유학 모칭은 대부분 완전범죄로 끝나게 되었다. 

요즘도 몇대 조가 누구, 몇대 조가 누구, 

이렇게 명문가 코스프레를 하는 경우를 보지만 

실상은 정말 그런지는 알 수 없다가 정답이다. 

생각해 보면, 

적자와 서자가 1대 1의 비율로만 있었다고 해도 

중간에 서자 조상이 한 명만 섞여 들어오면 제대로 된 양반에서 탈락해버린다고 하면, 

조선시대에 제대로 된 양반은 얼마나 있었을까? 

18세기 초반까지도 우리나라 양반 숫자는 10프로가 안 되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이처럼 양반 지위를 유지하는 데 있어 

같은 핏줄끼리도 차별하는 전통이 매우 강고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양반의 자손을 적자 서자 차별이 없었다면

18세기 초반에도 양반 비율이 10프로가 안 될 리가 없다는 뜻이다. 

제 아무리 대단한 조상의 후예라도 

중간에 한 명만 서자 조상이 들어오면 

그 집안은 출세의 상한선이 딱 정해져

중인을 전락해 버리는 것이 조선의 시스템이라, 

명문의 후예란 정말 그런지 

잘 살펴봐야 맞다는 말이 정답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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