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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읽을만한책] 정세규鄭世奎 《연행일기燕行日記》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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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규의 《연경일기燕京日記》를  방금 독파하다. 이 일기는 병자호란 이후, 그리고 중원에서는 명에서 청으로 교체된 직후인 1645년, 인평대군을 수괴로 하는 조선사절단의 넘버2인 부사로 임명되어 연경을 다녀온 정세규라는 사람의 연행록이다. 


이후 연행록과는 여러 모로 다르다. 이는 시대적인 상황 때문에 중원이 아직 혼란이 정비되지 않아 중국으로 오가는 행차가 자유분방한 편인 바, 이후에는 이런 모습이 없다. 이후 연행록을 보면 사행길은 사사건건 중국 당국에서 간섭받는다. 


나아가 전후의 혼란이 여실하다. 더불어 심양의 황궁 조성 직후 모습이 적나라하다. 


덧붙이건대 담배 문화와 관련한 논급이 적지 않아 이쪽 관심자들은 주목할 만하며, 당시 조선인들이 얼마나 생선회를 즐겼는지를 증언하는 장면이 많다. 이를 보면 조선시대 미라에서 왜 기생충이 그리 많게 다양하게 나오는지 엿보기에 충분하다. (February 22, 2014) 



*** 


지금 관련자료를 검색해 보니 연경일기燕京日記가 아니라 《연행일기燕行日記》다. 조영임 옮김으로 도서출판 학민사에서 2014년 02월 15일에 공식 출간됐다. (정가 2만4천원) 


YES24가 이 책을 소개한 내용을 추리자면, 조선중기 정세규가 "1645년 사은겸진하부사로 차출되어 북경을 다녀오면서 남긴 일기로, 동아시아의 문학과 철학, 문화와 역사, 외교와 교역 등에 관한 광범위하고 다양한 기록의 보고"라고 한다. 덧붙여 "명청 교체기의 혼란했던 시기에 조선 지식인이 겪은 고뇌와 대청 의식 등을 여실히 보여줌과 동시에 개인적 체험을 넘어 중국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한다"고 한다. 


본래 저자 정세규鄭世奎는 조선 중기 문신으로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군칙君則, 호는 동리東里다. 1613년 사마시를 거쳐 음보蔭補로 의금부도사에 등용되고 이후 화순현감, 안산군수를 거쳐 1636년 충청도관찰사에 특진하고, 이후 형조판서 · 전주부윤 · 대사헌 · 호조판서 · 함경감사 · 지의금부사 · 우참찬 등을 번갈아 역임하고 이조판서에 이르렀다고 하니, 백으로 공무원 된 사람 치고는 상당한 출세를 했다. 죽은 뒤에 내린 이름인 시호는 경헌景憲.


옮긴이 조영임曺永任은 충북 제천 출생으로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보영保瑛, 호는 연당姸堂·지당芝塘. 충북대학교 문학박사로 이 책 출간 당시는 중국 광서사범대학 교수로 있다 하는데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는지는 모르겠다. 저서로 《아들아, 이것이 중국이다》(2008), 《조선시대 삼당시인 연구》(2009), 《학어집》(2011) 등이 있고, 공저로 《내가 좋아하는 한시』》(2013), 《청주의 뿌리를 찾아서》(2012)가 있다고 한다. 공역에 《역주화양지》(2007), 《동학농민국역총서》(2007), 《우암선생언행록》(2006)이 있다 하는 것으로 보아, 학적 역량과 저술 능력이 대단하다. 


이 번역서는 번역문과 원문을 첨부하고, 부록으로 <鄭世規의 《燕行日記》에 대한 일고찰'을 실었다. 


이하는 YES24가 제공하는 이 책 소개다. 


책 속으로


책을 내며


이 책은 조선 중기에 활동했던 정세규(1583~1661)의 연행일기를 한글로 옮긴 것이다. 정세규는 1645년 63세의 나이에 사은겸진하부사로 차출되어 북경을 다녀오게 되는데, 이때 남긴 일기가 바로 연행일기이다. 정세규의 자는 군칙(君則), 호는 동리(東里)이며,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우의정을 역임한 정언신(鄭彦信)의 손자이며 정율(鄭慄)의 아들로, 화순현감, 안산군수, 충청도관찰사, 호조참의, 전라도관찰사, 공조·이조·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바 있다.


연행록은 ‘동아시아의 문학과 철학, 문화와 역사, 외교와 교역, 학문과 비평 등에 관한 광범위하고 다양한 기록의 보고’이기 때문에 일찍부터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정세규의 연행일기 역시 개인적 체험을 넘어 중국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안내서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며, 명청(明淸) 교체기의 혼란했던 시기에 조선 지식인이 겪은 고뇌와 대청(對淸) 의식 등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17세기 연행록군 중 주목할 만한 사료라 여겨진다.


이 책을 출간하는데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석촌 이두희 선생님과 고산 한석수 선생님께서 번역본을 꼼꼼하게 읽고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 주셔서 오역을 줄일 수 있었다. 원문 입력은 김정선, 김은일, 송지현 후배들이 맡아서 했다. 이 자리를 빌어 두 분 선생님과 후배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선대의 귀한 유품을 유실하지 않고 잘 보존하여 후세에게 열람할 기회를 준 동래 정씨 나암공파(懶菴公派) 34손 정종호 선생님께 깊은 감사드린다.


끝으로 이 책의 출간으로 정세규의 연행일기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길 기대하면서, 출판을 기꺼이 맡아주신 학민사 여러분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2014년 1월


誠敬齋에서 曺永任


출판사 서평


이 책은 조선 중기에 활동했던 정세규(1583~1661)의 연행일기를 한글로 옮긴 것이다. 정세규는 1645년 63세의 나이에 사은겸진하부사로 차출되어 북경을 다녀오게 되는데, 이때 남긴 일기가 바로 연행일기이다.


연행록은 ‘동아시아의 문학과 철학, 문화와 역사, 외교와 교역, 학문과 비평 등에 관한 광범위하고 다양한 기록의 보고’이기 때문에 일찍부터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정세규의 연행일기 역시 개인적 체험을 넘어 중국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안내서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며, 명청(明淸) 교체기의 혼란했던 시기에 조선 지식인이 겪은 고뇌와 대청(對淸) 의식 등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17세기 연행록군 중 주목할 만한 사료이다.


정세규의 《연행일기》는 1645년 3월 17일 출발하여서 6월 16일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117일 동안 그날그날의 일자, 날씨, 하루 동안의 이동거리, 숙박, 먹은 것, 여정 순으로 기록한 편년체 형식과 일기 외에 보고 들은 것을 10개의 항목으로 따로 정리한 기사체 형식으로 작성하였다. 연행일기의 말미에는 경로와 거리를 비교적 상세하게 정리한 노정기(路程記)를 첨부하였다.


부록에는 이 책의 譯註者인 조영임의 <정세규의 연행일기에 대한 일고찰> 논문을 실었다. 이 논문은 정세규의 생애와 『연행일기』의 내용과 의의 등, 17세기 조선과 중국의 정치, 사회, 문화 등의 제 양상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논문자료가 될 것이다.


이 책의 출간으로 정세규의 연행일기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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