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계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이게 정말 궁금하다.
임진왜란 때 의병은 도대체 어떤 구조였을까?
일견해서는 구한말 의병처럼 국권 상실의 위기에서 온 국민이 들고 일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임란 당시 조선사회는 애초에 그런 게 가능한 사회가 아니었다 할 것이다.
전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노비인데,
노비하고 양반이 같이 들고 일어나 연대해서 의병을 만들어 싸웠겠는가?
일본도 전국 시대 내내 그렇게 싸움이 있어도
농민들은 무사들 싸움을 구경이나 할 뿐이었다는 것인데,
과연 노비들이 임란 때 왜병이 쳐들어왔다고 우리나라 구하자고 양반 모시고 같이 의병을 했을까?
국민국가라는 것이 여러 조건이 있겠지만,
내가 사는 나라가 내 나라라는 의식이 있어야 하는 바,
임란 당시에는 그런 것이 가능한 사회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의병은 도대체 어떤 구조로 되어 있었을까?
사족들만 모여서 활동했을까?
사족들이 노비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의병활동을 했을까?
농사짓기 바쁜 농민들이 과연 요즘 영화나 티비에서 나오듯이
전 국민 총궐기로 싸웠을까?
이런 것이야말로 현재의 상황을 임란 당시에 투영하는 시각인데
임란 당시의 의병이야 말로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여 그 구조부터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것이 옳지 않겠는가.
*** [편집자주] ***
곽재우를 비롯한 당시 의병장 격문을 보면 결국 공동체 지키기였음을 본다.
구국이 아니라 우리 동네는 우리가 지킨다는 그런 의식의 발로였지, 결코 국가 전체를 상정하지 않았다.
물론 예외가 없지는 않겠지만, 그런 까닭에 의병은 결코 전국 단위로 넘어가지 않았다. 딱 그 고향만 지켰다.
이에서 관건은 국가 권력이었다. 저 공동체 마을 수호 중심 의병을 국가 단위로 확산해야 했다.
이를 위해 어떤 당근을 국가는 준비했을까?
이것이 바로 의병이 관군이 되는 과정이었으니, 출발이 달랐으므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고 실제 그리되지도 않았다.
언제 곽재우가 권율 밑으로 들어갔던가? 결코 들어가지 않았다.
이 문제는 편집자 역시 나중에 발설할 기회를 엿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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