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일본유학 다녀오면 친일파 돼…150만 친일파 단죄해야"
송고시간2020-10-12 14:12
이승우 기자
"이영훈은 신종 매국노이자 민족 반역자"
www.yna.co.kr/view/AKR20201012096100005?section=society/all&site=hot_news
등단 50주년을 기념하는 기자간담회에 선 조정래 작가가 친일파 얘기를 꺼냈는데, 전후맥락은 내가 보지 아니했으므로 짚기 곤란하나 단단히 억하심정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 작심하고 그 비판에 나선 것이니, 맺힌 것이 오죽 많았으면 저리 말했을까 싶다.
다만 그렇다 해서 일본 유학파를 깡그리 친일파로 매도한 건 대단한 오버로 보며 이때문에 다른 논란에 휘말리지 않을까 싶다.
유학파가 그 나라 문화에 친연성을 갖는 일은 인지상정이라 할 만하며 더구나 그 문화세례를 받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겠는가?
그건 차치하고 굳이 조 작가가 경제사학도로서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자라 해서 논쟁 중심에 선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목해 십자포화를 퍼부었거니와
이 영감님이 왜 그랬을까?
두 사람 악연을 추적하면 그 연이 아주 깊고 오래임을 안다.
아래 첨부기사들을 보면 조 작가가 왜 저리 나오는지가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2007.05.28 15:27:01
"'아리랑'은 광기어린 증오의 역사소설"
이영훈 교수 "조정래씨는 사실까지 조작"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일제하 식민지기는 수탈과 학살로 가득 찬, 분노와 증오로만 설명될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었다. 수난과 모멸의 시대였지만, 새로운 학습과 성취의 시대이기도 하였다. 식민지기의 민족사적 내지 세계사적 의의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나는 앞으로 누군가 새로운 역사소설가가 나와서 식민지기의 수탈과 개발을 상징하는 김제와 군산의 역사를 성찰의 역사소설로 다시 써 주길 고대해 마지 않는다."
한국 경제사 전공인 서울대 이영훈(55) 교수가 '태백산맥'과 함께 소설가 조정래씨의 역사대하소설을 대표하는 양대 축으로 거론되는 '아리랑' 전 12권(1990-94)을 '역사학 텍스트'로 분석한 결과, 역사소설로는 자격과 함량 모두 미달이라는 결론을 내린 다음에 한 말이다.
앞으로는 더 이상 '아리랑'과 같은 역사소설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나아가 이 교수는 역사소설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트럭 한 대 분량이나 되는 자료를 섭렵했다는 일본의 저명한 작가 시바 료타로를 곳곳에서 상기시키면서 조씨는 과연 얼마나 되는 자료를 섭렵했느냐고 물었다.
뉴라이트재단과 헤럴드미디어가 공동발행하는 계간 '시대정신' 여름호에서 이 교수는 '우리시대의 진보적 지식인'으로 조정래씨와 그의 '아리랑'을 도마 위에 올렸다.
이 교수는 1904년 러일전쟁 이후 1945년 해방 때까지 일제식민치하에서 조선 민중이 겪은 고난과 수난의 역사를 다룬 '아리랑'을 "일종의 광기, 학살의 광기와 거꾸로 통하는 광기"로 가득 찬 소설이라고 총평했다.
그러한 가장 중요한 근거로 소설이 제시한 연대기적 사실조차 대부분이 전혀 사실과는 동떨어진 점을 꼽으면서 "나는 일개 소설가가 이런 엄청난 허구의 사실을 그렇게도 당당히 역사적 사실로 소리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고 꼬집기도 했다.
예컨대 '아리랑' 첫 대목에서는 토지조사사업 과정에서 지주를 크게 다치게 한 차갑수라는 농민을 김제경찰서 죽산주재소장이 마을 당산나무에 결박하고는 '조선경찰령'에 따라 즉결 총살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으며, 나아가 그런 법령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리랑'은 태연히 토지조사사업기간에 차갑수와 같은 즉결처형사례가 4천여 건에 이른다고 주장한다고 이 교수는 말한다.
나아가 '아리랑'은 곳곳에서 평화롭던 김제평야가 러일전쟁 이후에 야금야금 일본인 지주 손에 들어갔다고 묘사한 것은 물론, 그 이전에 실제 전라북도 관찰사로 재직한 이완용이 김제만경평야를 일본에 팔아먹었다고 했으나, 이는 역사조작이라 이 교수는 덧붙인다.
이 교수에 의하면 김제만경평야는 19세기까지만 해도 수리시설이 전혀 없는 갈대 무성한 황무지였을 뿐이고, 이곳이 곡창지대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10년 이후가 된다. 이 평야를 일본인에게 빼앗긴 것이 아니라, 이를 곡창지대로 개발한 것은 오히려 일본인들이 된다.
그렇기에 농지를 빼앗긴 조선농민들이 고향을 떠나 만주로 내몰렸다는 '아리랑'의 묘사와는 달리, 오히려 수리조합결성을 통해 김제만경평야가 개발됨에 따라 조선농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아리랑'에서 이처럼 사실조차 호도한 사례가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만큼 많다고 지적하면서, 이 때문에 "식민지시대의 역사를 구체적이며 총체적으로 알리기 위해 소설을 썼다"는 작가의 말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07.06.13 21:24:18
<조정래, 소설 `아리랑' 비판 교수에 반박>
(서울=연합뉴스) 임은진 기자 = "이영훈 교수는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작가는 진실만을 말한다. 난 근거 없는 건 절대 쓰지 않는다"
소설가 조정래씨는 13일 오후 서울 동국대에서 열린 `역사의 간지(奸智)에 휘말린 인간 공동체의 운명' 특강에서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소설 `아리랑'에 대해 "일종의 광기, 학살의 광기와 거꾸로 통하는 광기"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 교수는 지난달 계간지 `시대정신' 여름호에서 조씨와 `아리랑'에 대해 "일개 소설가가 이런 엄청난 허구의 사실을 그렇게 당당히 역사적 사실로 소리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라고 비난한 바 있다.
조씨는 이 교수가 `김제만경평야는 19세기까지 수리시설이 전혀 없던 갈대밭'이라고 한 것에 대해 "백과사전과 교과서에 대규모 저수지였던 사적 11호 벽골제는 1천500여년 전에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상업적 목적에 따라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발언을 해 할머니들에게 크게 혼나고 교수도 못할 뻔했다"며 "이런 교수 밑에서 배우는 학생들이 불쌍하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작가에겐 창작 전 방대한 자료의 섭렵과 현장 답사는 필수"라고 말해 이 교수가 일본 작가 시바 료타로와 비교하며 `조씨가 얼마나 많은 자료를 봤는지 의문'이라고 한 것을 간접 비판했다.
대하 역사소설 `아리랑'은 1904년 러일전쟁 이후 1945년 해방 때까지 일제식민 치하에서 조선 민중이 겪은 고난과 수난의 역사를 다룬 조씨의 대표적 소설로 모두 12권이다. [2007.06.13 송고]
2007.08.23 16:48:24
<뉴라이트 계열, 작가 조정래에 집중포화?>
'아리랑' 이어 '태백산맥'도 혹평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프랑스 일간 라 크루아(La Croix)는 지난 9일자에서 18면 전면을 할애해 현재 7권까지 프랑스어로 번역돼 출간된 소설 '태백산맥'과 그 작가 조정래를 집중 소개하면서 "이 작가는 한국인들에게 한국 근대사를 재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극찬했다.
나아가 조 작가야말로 "조국분단의 원인을 이해하고 민족의 장래를 위한 열쇠를 찾으려고 노력했다"는 평가도 덧붙였다.
비슷한 시간, 국내에서는 그의 태백산맥을 향한 뉴라이트 계열의 혹평에 가까운 비판이 나왔다.
최근 발간된 계간 역사교양지 '한국사시민강좌' 41호에 '소설 태백산맥 속의 대한민국'을 투고한 한국학중앙연구원 양동안 교수는 작가 스스로 '진실의 기록'임을 강조한 태백산맥은 "허위의 기록이라 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태백산맥은 여순사건 이후 한국전쟁 휴전 직후까지 전라남도 벌교를 시ㆍ공간으로 설정하면서 이를 무대로 좌익인사들이 전개한 투쟁에 관한 이야기로 구축한 대하소설.
양 교수는 이 소설이 "대한민국과 관련된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서술했으며, 그러한 내용은 거의 모두가 실제와 부합하지 않거나 과장된 것"이라면서 "북한공산군의 침공을 받아 사멸해가는 대한민국을 구원해준 미국에 대해서도 마치 악의 화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부정적으로 서술했다"고 말했다.
또 태백산맥은 "대한민국에 반대하는 세력들에 대해서는 전부 다 극히 긍정적으로 서술"했으나, 이 역시 "거의 모두가 실제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소설은 대한민국을 미국이 세운 속국과 다름없다고 설정했으나, 실제 미국정부는 이승만을 정계에서 퇴출시키려 했으며, 1946년 12월 이후 이듬해 4월에 걸친 미국방문에서 이승만은 차관급 이상 고위관리를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는 점만 보더라도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나아가 대한민국 건국주체세력은 친일 민족반역자들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대한민국 건국을 위해 실시된 1948년 5월10일 제헌의회 선거(5ㆍ10선거)의 선거법이 친일파들의 피선거권을 물론 선거권까지 박탈한 사실에서도 분명하게"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난다고 양 교수는 덧붙였다.
이에 앞서 지난 5월에는 경제사 전공인 서울대 경제학과 이영훈 교수가 뉴라이트재단과 헤럴드미디어가 공동발행하는 계간 '시대정신' 여름호에 기고한 글을 통해 태백산맥과 함께 조정래 리얼리즘 소설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되는 '아리랑'에 대해 "광기어린 증오의 역사소설"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조정래씨를 향한 칼날을 세운 두 교수는 사상적으로 뉴라이트 진영에 속한다는 점이 주목을 끈다.
조씨는 이 교수의 비판에 대해 지난 6월 한 특강 모임에서 청중의 질문을 받고 "이영훈 교수는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작가는 진실만을 말한다. 난 근거 없는 건 절대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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