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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중국 쪽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잡곡기반의 황하유역과
도작기반의 장강유역이
심지어는 돼지키우는 법도 달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생활양상 전반이 양쪽은 많이 달랐는데
그 이유는 역시 양측의 생산기반이 무엇이었느냐가 정말 중요했던 듯 하다.
도작기반 사회가 언제나 경제적으로 우위였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도작기반의 장강유역이 경제적으로 잡곡기반의 황하유역을 압도한 것은
어마무시한 세월의 뒤로
서기 천년기가 되어야 비로소 강남의 경제력이 중원을 앞질렀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우리는 잡곡 기반사회라고 하면 무조건 후진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조선 고구려는 깡 잡곡이나 먹고 살던 사회라고는 생각않는다.
그래도 쌀농사 지었겠지.. 여기랑 비슷했겠지 하는 생각이 머리 한 구석에 언제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양반들은 깡 잡곡만 먹고 살던 사람들이다.
고구려는 쌀농사가 일부 있었겠지만 일년 내내 기장과 조를 먹고 살던 사람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무슨 말이냐-.
고조선, 고구려, 부여는 중국의 장강유역보다는 황하유역에 보다 가까운 사회이다.
황하유역 문명의 특징을 가지고 있고, 장점이건 단점이건 거의 유사한 특징을 누리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황하유역과 장강유역의 경제적 격차가 역전되던 바로 그시기에
한국사의 잡곡 기반의 북쪽 문명과 도작 기반의 남쪽문명의 경제력도
바로 그 시기에 역전된 것이 아닌가 한 번 생각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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