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도를 보면 필암서원과 김인후 묘, 그리고 그의 생가가 다닥다각 붙었음을 안다. 황룡면 아곡리가 아치실이라 해서 행주기씨 세거지다. 장성 읍내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강이 황룡강이다. 필암서원과 난산 앞을 흐르는 작은 시내는 황룡가 지류들이다.
Stele of Kim Inhu for his Loyalty, Jangseong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41호
Jeollanam-do Cultural Heritage Material No. 241
하서河西 선생은 인종仁宗이 승하하신 7월 1일이면 이곳 난산卵山에 엎드려 종일 통곡하였다. 하서의 이같은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단이 통곡단痛哭壇이며, 그 사실을 새겨 새운비가 난산비卵山碑다. 1793년 무렵에 석재碩齋 윤행임尹行恁이 비문을 지었으나, 비를 세우지 못하다가 1843년 그의 아들 교리 윤정현尹定法이 추기追記를 쓰고 광주목사 조철영趙徹永이 비를 세웠다. 2003년에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41호로 지정되었다.
This stone stele, called Nansanbi, was erected to honor Kim In-hu (1510-1560), a renowned scholar-statesman of the mid Joseon Period (1392-1910), who is said to have mourned all day long on each anniversary of the death of King Injong, whom he had loyally served.
Each year he would prostrate himself and wail all day at a place called Nansan, hence the name of the stele, which was later marked by the erection of Tonggokdan Altar (lit. "Wailer's Altar").
The inscription on the stele was written in 1793 by Yun Haeng-im (1762-1801), but it was not engraved until 1843 when the stele was finally erected by Jo Cheol-yeong, the County Magistrate of Gwangju. The governor's son Yun Jeong-hyeon wrote a postscript about the stele.
The stele was designated as Jeollanam-do Cultural Heritage Material No. 241 in 2003.
현지 안내판을 전재한 것인데, 영문판이 희한하게도 고수의 냄새가 난다. 지방지정문화재에 이런 일이 극히 드문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누가 초고를 쓰고 누가 감수를 했는지 모르겠다.
너른 벌판을 사이에 두고 맞은 편 산기슭에 하서 생가와 하서 묘소가 있다.
난산은 아주 작은 둔덕에 가깝다. 그 기슭에 저 비가 있고 그 정상에 통곡단이 있다.
한데 이 통곡단은 석탁 부재다. 주변에 절터 두 곳이 있다고 이 고장 출신 팔척장신 행주기씨 호철씨가 증언하는데 그 둘 중 한 곳에서 뽑아왔을 가능성이 있단다.
비석은 암질이 좋지 않아서인지 글자를 아주 깊이 팠다는 점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하서 하면 뺄 수 없는 데가 필암서원인데 그 필암서원도 아주 가차븐 곳에 위치한다.
'문화재현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성 삼서 잔디밭 우뚝한 금성나씨 삼강문 (4) | 2020.06.24 |
---|---|
4,500 year old LURGAN LOGBOAT, DUGOUT CANOE (0) | 2020.06.23 |
두산타워를 빛내는 이간수문二間水門 (0) | 2020.06.18 |
《나만 못본 구라파 유람기》 (10) 좃또탑 올랐다가 좆된 이야기 (1) | 2020.06.18 |
長野大王わさび農場 나가노 대왕와사비농장 (0) | 2020.06.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