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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장성 삼서 잔디밭 우뚝한 금성나씨 삼강문

by taeshik.kim 2020.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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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나씨 삼강문 錦城羅氏三綱門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28호
장성군 삼서면 우치리 259-2번지

Memorial Gate of Geumseong Na Clan
Designation: Jeollanam-do Province Cultural Ileritage Material No. 128
Location: 259–2, Uchi-ri, Samseo-myeon, Junghong-gun County, Jeollanam-do Province




삼강三綱이란 군신君臣·부자父子·부부夫婦 사이에 기본이 되는 도리로 유교 도덕의 핵심이다.

 

이 삼강문은 금성나씨 가문 소속 인사들의 충忠과 효孝와 열烈의 정신을 표창하고자 세운 정려각旌閭閣이다. 곧 충신忠臣인 경성판관 나통서羅通緖(1572~1637), 효자孝子인 성균진사 나봉서羅逢緖(1570~?), 열녀烈女들로서 공조참판 나덕전羅德全의 처인 옥천실씨沃川薛氏와 창의사 나준서羅遵緖의 처인 공산이씨公山李氏가 그들이다.




조선 선조 때 나덕선과 옥천 설씨 부인 사이에는 세 아들 봉서·통서·준서가 있었다. 설씨부인은 건강이 좋지 못한 남편을 정성을 다해 간호하다가 병세가 위독해지자 자기 손가락을 잘라 흐르는 피를 입에 넣어 생명을 연장했다. 1년 뒤 남편이 죽자 설씨 부인도 노환으로 병석에 눕자 큰아들 봉서는 성균관 진사로 있다가 낙향해 모친을 정성껏 간호했다.

둘째 아들 통서는 무과에 급제하고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강화유진江華留鎭으로 있다가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자 낙향했다가 인조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해 청주까지 올라갔다가 화친으로 회군하고 말았으니, 울분을 참지 못하고 병을 얻어 죽었다.




셋째 아들 준서의 처 공산이씨는 남편이 병을 얻게 되자 시어머니를 따라 단지주혈斷指注血해 병을 낫게 했다고 전한다.

 

삼강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맞배지붕(옆에서 볼 때 '人'자 모양)이며 각각의 문에는 홍살(화살 모양)을 달아 내부를 막고 있다.

 

삼강문 안에는 세 사람의 명정 편액이 걸렸으니, 충신忠臣 가선대부嘉善大夫 행경성판관行鏡城判官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나통서羅通緖, 효자孝子 성균진사成均進士 나봉서羅逢緖, 열부烈婦 학생學生 나덕규羅의 처妻 공산이씨公山李氏다. 


 

 
이 정려각은 지금은 온통 잔디농장으로 변한 삼서면 우치리 드넓은 잔디밭 평원 한가운데 아주 얕은 둔덕 정상을 지킨다.

비록 해발은 낮으나 사방을 조망하는 지점이다. 주변 마을은 금성나씨 집성촌일 것이다.


*** 

 

이들 나씨 가문 인물들에 대해서는 호남학도 안동교 선생이 아래와 같이 간단한 이력을 정리한 적이 있다. 

 

나봉서(羅逢緖) : 1570~? 본관은 금성錦城이고 자는 언장彦章이며 호는 매월당梅月堂이다. 부친은 나덕전羅德全이고 증조는 나세찬이다. 1609년 진사시에 합격했으며 영광 삼서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나준서羅遵緖 : 본관은 금성錦城이고 부친은 나덕전羅德全이며 나통서의 아우이다. 진사?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나통서(羅通緖) : 1572~1637. 본관은 금성錦城이고 자는 사장士章이며 호는 계봉桂峰이다. 부친은 나덕전羅德全이고 나봉서의 아우이다. 1603년 무과에 급제하고 경성판관에 제수되었다. (연원도에 보임)

나해구(羅海龜) : 1581~1660.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자는 응주應疇이며 호는 석호石壕이다. 부친은 나덕양羅德讓이고 나해봉의 형이다. 나주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나해륜(羅海崙) : 1583~1659.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자는 응숙應淑이며 호는 송도松島이다. 부친은 나덕겸羅德謙이며 1624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효릉참봉에 제수되었다.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에 창의했으며 문집으로 『송도유적(松島遺蹟)』이 있다. 나주에 거주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나해봉羅海鳳 : 1584~1638.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자는 응서應瑞이며 호는 남간南磵이다. 부친은 나덕양羅德讓이며 1606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경기전참봉, 별제別提에 제수되었다. 『남간집(南磵集)』이 있다. (연원도, 은시록, 문인록에 보임)



As its name Samgang (Confucian principle of three bonds" linking rulers and ministers, parents and children, and hushands and wives) suggests, this gate was buill to honor the virtuous lives led by some members of Grumseong Na Clan who were highly respected by their contemporaries for their loyalty, filial piety, ard fidelity.






They are: Na Tong-seo, who served as administrative assistant (Pangwan) of Gyeongseong: Na Borg-seo, who was a distinguished scholar and filial son: Lady Seol from Okcheon and Lady Yi from Gongsan, who were greatly admired for their faithfulness to their husbands Na Deuk-jean and Na Jun-seo. who served as Vice Minister of Works (Gongjo Champan and righteous army commander (Changuisa), respectively.




It was when Joseon was under the reign of King Seonjo (r. 1567-1608) that Na Deok-jeon and his wife Lady Seol had three sons named Bong-seo, Tong seo, and Jun-seo.

When Na fell critically ill, Lady Seol cut her finger to feed her husband with her blood as a final attempt to save his life.

When Lady Seol took to her bed after the death of her husband a year later, their oldest son Na Bong-seo retired from his position in Seonggyungwan National Academy and returned home wore he took great care of his mother until her death.




Records also reveal that Lady Yi from Gongsan, wife to the third son Na Jun-seo, took a leaf out of her mother-in-law's book and cured her husband who fell ill by feeding him with her blood.



 



This memorial Gate measures three kan by one kan (a unit of measurement referring to the distance between two columns) and has a gable roof and "red arrow' ent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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