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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장수 삼고리고분군에서 드러난 가야문화의 흔적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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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군 삼고리 고분군서 삼국시대 토기·철기 70여 점 발굴
정경재  / 2021-08-20 17:36:34

https://k-odyssey.com/news/newsview.php?ncode=179570477511540 

 

장수군 삼고리 고분군서 삼국시대 토기·철기 70여 점 발굴

(장수=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전북 장수군은 삼고리 고분군에서 삼국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와 철기 70여 점을 발굴했다고 20일 밝혔다.군은 문화재청 지원을 받아 2018년부터 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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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장수군...하도 한반도 오지의 대명사로 간주되었거니와, 덧붙여 단독으로 이름을 내세우지는 못해서 언제나 무진장이라 해서 무주 진안과 더불어 삼칭三稱되곤 했으니, 것도 맨마지막 자리는 언제나 장수 차지였다. 그런 장수가 근자 존재감을 각인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벌이어니와 그 일환으로, 때마침 문재인정부가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내세운 가야사연구복원 사업에 편승해 관련 움직임을 본격화했거니와 

이를 위해 무엇보다 가야사 전문을 표방하는 군립박물관을 세우기로 하는 한편, 장수 일대를 터전으로 삼은 가야문화권 구명을 위한 발굴작업도 활발히 펼치거니와 이번에 날아든 저 소식 역시 그 일단이다. 

이를 위해 우선 이번에 발굴한 저 삼고리고분군이라는 위치 특징을 지도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으니, 왜 번번이 우리는 저와 같은 소식을 접할 적에 지리정보를 확인해야 하느냐 하면, 그에서 그 문화 일단이 드러나는 까닭이다. 이에 이번에 파제낀 무덤을 보면 천천면 삼고리 산 76번지 라 하거니와, 나는 등고선 개념이 확실히 드러나는 위성사진을 선호하거니와, 이를 통해 부쳐먹을 땅이 있느냐 없느냐를 판별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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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좋은 곳으로 안내 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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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위성지도로 표시하면 저 지점이거니와 그것을 캡쳐하면 

 

 

일케 된다. 보다시피 장수는 온통 산이라, 소백산맥이 관통하는 이 고장은 내 고향 김천보다는 그래도 덜하기는 하지만, 주변으로 온통 해발 천미터에 육박하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친 곳이라, 그리하여 그 험준한 산들을 관통하는 강이 형성한 분지에 마을을 형성했으니, 장수라고 할 적에 그 분지는 저 지도에 내가 그린 것과 같은 저 세 분지 혹은 계곡이 삼분한다 하겠다. 

 

 

좀 더 확대해 들여다 보면 삼고리고분군이라는 데가 자리한 데가 바로 저기라, 볼짝없다. 구릉이다. 평지가 아닌 왜 저런 데다가 무덤을 만들었겠는가? 첫째 홍수로 인한 유실 우려요 둘째는 그에 따른 산 사람 구역 확보다. 이게 신라랑 비교하면 신라 이 친구들은 사람이 주거로 삼아야 할 곳에다가 애초에는 무덤을 잔뜩 쓰는 바람에 나중에 토지이용률 난관에 봉착했으니, 가야문화권 역시 애초에는 저러했는지는 내가 자신이 없으나 산으로 기어올라 저승세계의 터전으로 삼기 시작했으니, 이 삼고리고분군도 마찬가지다. 

내 누누이 지적했듯이 동시대 신라무덤과 비교할 적에 가야문화권에서는 무덤을 산 능선 꼭대기를 따라 만들며, 그 내부 구조는 졸라 길쭉이 빼빼로형이라, 무덤방을 긴네모꼴로 만들고 거기다가 여러 명을 떼거리로 묻는 점에서 갈 길이 달았다. 

이 장수 일대 고고학 발굴은 전주문화유산연구원이라는 데서 주로 하는데 이번에도 이쪽에서 발굴을 전담했다. 조사시간은 올해 5월 3일 이래 오는 10월 2일까지라 실조사일수는 40일로 짰다. 조사 면적은 300㎡라 아주 작다. 그것은 이번에 조사키로 한 무덤이 꼴랑 하나인 까닭이다. 

 

앞서 본 계곡을 삐딱하게 꼬나 보면 저런 식으로 되어 있거니와, 삼고리 고분군이 그 어중간에 보인다. 그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조사가 있었다.

 

 

주요한 발굴성과를 도판으로 보면 아래와 같다. 

 

 

이것이 가야문화권 무덤 전형적인 위치 특징이다. 보다시피 산 만데이를 따라서 집중으로 분포한다. 그 능선골을 따라 쪼르륵 만들었다. 이것이 동시대 신라문화권과는 확연히 달라서 신라에서는 저런 식으로 만드는 일은 없고, 비스듬한 능선 중턱에다가 만든다. 

삼고리고분군은 삼장마을 북쪽을 감싼 해발 380m 능선 정상을 차지했으니 육안으로 이곳에 무덤이라고 확인하는 데는 대략 20곳 안팎이라, 현장은 이미 내가 이전에 돌아본 적이 있다. 이 일대에 포진하는 무덤들은 5∼6세기 가야문화권에 속한다고 간주한다. 무덤 구조로 보면 수혈식 석곽묘라 해서 땅 구덩이를 긴네모꼴로 파고는 그 사방으로는 돌삐를 둘러 쌓았다.   

7호분은 3호분에서는 북쪽으로 80m 지점에 위치한다. 조사 이전 드러난 봉분은 지름 약 16m. 이를 까디빈 결과 이 무덤 전체 오야붕이 묻혔을 1호 토광土壙을 필두로 하는 토광 6곳과 석곽石槨 2기가 드러났다. 내가 뭐랬어? 봉분 하나 아래다가 잔뜩 시체 쑤셔넣는 것이 가야문화권 전통이랬자나.

 

요로코롬 드러났다. 우선 석곽은 두 군데가 드러났다 했으니, 그걸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이것이 1호 석곽이고 

 

 

이것이 2호인데 비실비실하다. 

다음 토광은 아래와 같다. 이걸 토광이라 하는 까닭은 앞서 본 석곽과는 달리 주변으로 돌을 쌓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목곽을 썼을 것이지만 다 삭아 없어졌다. 

 

 

 

 

뭐 이런 식인데, 다만 3,4호 토광 출토 토기가 조금은 독특해서 보니 고령 지산동의 그것과 상통한다. 대가야문화권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흔적 아닌가 한다. 좀 더 자세히 보면 아래와 같다.

 

 

뚜껑 있는 친구들은 마치 후대 출현하는 골호라 해서 뼛가루 묻는 항아리 같다.

 

 

이런 것들이 출토했다. 

 

뭔가 금빛 찬란한 유물이 나왔으면야 금상첨화겠지만, 이쪽 무덤들 수준을 보면 장수 지역 욕망과는 달리 이쪽에 독자적인 세력을 갖춘 별도 왕국보다는 어떤 왕국 산하 지방 유력자들의 무덤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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