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2천년 전 저울추 발굴…한반도와 무게 규격 같아
김호준 기자 / 기사승인 : 2020-12-27 10:29:07
야요이시대 유물…"대륙의 도량형 제도를 도입해 교역"
k-odyssey.com/news/newsview.php?ncode=179544618055466
그래서 일본 언론 보도를 찾아봤다. 개중 서일본신문 보도를 골라본다.
国内最古の分銅を確認 朝鮮と共通規格で交易か 春日・須玖遺跡群
2020/12/22 6:04
西日本新聞 社会面 小川 祥平 西村 百合恵
www.nishinippon.co.jp/item/n/675690/
두 보도를 종합하면 먼저 문제의 저울추가 발견된 곳이 역대로 한반도랑 일본열도가 교통하는 제1 창구로 꼽히는 북규슈 후쿠오카福岡縣 가스가시春日市 스구유적군須玖遺跡群이라는 데라, 이곳은 기원전 2세기 이래 기원후 1세기에 이르는 야요이시대弥生時代 중후반기 유적이라 하거니와
일본 학계에서는 이 유적이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왜인전倭人伝에 보이는 노국奴国(나코쿠なこく라고 현재는 일본에서는 읽는다) 라는 소국의 왕도王都로 간주하곤 한다.
가스가시교육위원회春日市教育委員会에 의하면, 1990~2014년에 걸쳐 동 유적군 북부北部 3유적에서 발굴한 돌제품 8점이 천칭天秤(balance scale)용 분동分銅임을 밝혀냈다고 한다. 개중 1점은 기원전 2세기 무렵 야요이시대 중기전반기 유물로 일본에서는 가장 오래된 저울추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발굴 당시 이들 석제품은 저석砥石(자석), 돌도끼(석부石斧)로 간주되었지만, 고고학 전공인 武末純一 후쿠오카대학 교수가 분석한 결과 무게의 규정성이라든가 가공한 흔적 등을 보아 분동分銅 「権」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8점 대부분은 함께 발견된 토기로 볼 적에 야요이시대 중기전반~후반 유물로 평가된다. 개중 무게 대략 69g인 1점이 기원전 2세기 유물로 평가됐다. 훼손이 적은 6점은 한국 창원 다호리유적茶戸里遺跡 출토 기원전 1세기 무렵 무게 11g인 청동저울추의 3배, 6배, 20배, 30배 중량으로, "조선반도와 공통하는 규격이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됐다.
스구유적군에서는 청동기 생산공방이 있고 분동分銅은 원재료 계량 외에도 교역에도 쓰였을 것으로 보인다.
같은 규격의 分銅은 현재까지 석천현石川県 팔일시지방八日市地方(じかた)遺跡에서 출토된 적이 있다. 오사카부大阪府 亀井遺跡에서는 일본 독자 규격의 分銅도 확인됐다. 특히 야요이시대 중기 후반~후기 分銅으로 오래된 것이라 해 봐야 기원전 1세기 무렵을 거슬러올라가지 않았다.
이들 저울추 8점은 내년 1월 5일부터 2월 14일까지 「奴国の丘歴史資料館」(春日市)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빈출하는 분동分銅이라는 말을 찾아보니, 훈도ふんどう라고 읽으며 원주형 금속 덩어리를 말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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