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적자가 생각하면 서자는 상대도 안되는 부류였을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또 어찌 생각하면 적자가 볼 때 서자는 잠재적 위협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앞에서 보면, 18세기 이후가 되면 적자보다 서자가 숫자가 더 많아 지는데
사람이라는 것이 적자가 서자보다 항상 똑똑하고 잘나게 나올리가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서자와 적자를 똑같이 대우한다는 것은 결국,
집안 재산 분배에 있어 경쟁이 심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가끔 서자 자손이 과거에 장원을 해버려 문제가 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었던 것을 보면,
서자들이 금고가 풀려 과거를 마음대로 보고 경쟁하게 되면
이는 곧 적자들의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 학계에서는 전자와 서자의 관계를 지나치게 협조적 내지는 순종적으로 보는 듯 한데,
상식적으로 이런 구도에서는 겉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속으로는 결코 화해 모드로 지속하기 어려을 것이다.
홍길동전을 써서 적서차별의 부조리 함을 지적했던 허균은
그의 논설 "호민론"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필자가 요약정리함)
夫豪民者 大可畏也
豪民 伺國之釁 覘事機之可乘 奮臂一呼於壟畝之上 則彼怨民者聞聲而集 不謀而同唱
是皆厲民自養之咎 而豪民得以乘其隙也
이 호민이 누구일 것인가?
허균이 이야기한 이 호민이 바로 19세기의 모칭 유학들,
그리고 전 인구의 절반이었다는 양반의 서출 자손들이 아니겠는가?
19세기 말 조선사회를 뒤흔든 여러 민란의 배후에는
바로 이들 호민들이 있었음이 틀림 없다.
*** [편집자주] ***
요새 나오는 말들을 종합하면 홍길동전은 허균 소작이 아니라 조선 후기작이다.
그가 홍길동전 작가건 아니건 물론 필자 말의 대세엔 지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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