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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전북 장수군에서 찾았다는 12세기 전반기 고려시대 무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2.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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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군 삼봉리 고분군에서 돌방무덤·청자류 발굴
최영수 / 2022-10-20 14:55:24

https://k-odyssey.com/news/newsview.php?ncode=179560952451951

장수군 삼봉리 고분군에서 돌방무덤·청자류 발굴

(장수=연합뉴스) 최영수 기자 = 전북 장수군은 장계면 삼봉리 고분군(전라북도 기념물) 현장조사에서 돌방무덤과 청자류 등을 발굴했다고 20일 밝혔다.삼봉리 고분군에서는 가야시대 석곽묘 1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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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식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 고려시대 무덤이다. 왜냐면 고려시대 무덤으로 도굴 피해 보지 않은 데가 거의 없는데, 이번에 판 데는 그 때를 타지 않았다니 말이다.

저 보도 원천 소스인 장수군 보도자료 원문은 아래와 같다.

발굴현장 전경



장수 삼봉리 고분군 내 돌방무덤에서 최고급 청자 출토

장수군이 삼봉리 고분군 발굴조사를 통해 고분군 내 돌방무덤에서 최고급 청자 등을 발굴했다고 20일 밝혔다.

장수군 장계면 삼봉리에 자리한 삼봉리 고분군(전라북도 기념물 제128호)은 그동안 전북 동부지역을 대표하는 가야계 고분으로 알려져 있다.

군은 지역의 대표문화자원에 대한 역사성과 가치를 규명하기 위해 광범위한 삼봉리 고분군에 대하여 순차적으로 발굴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이번 발굴조사는 전주문화유산연구원이 진행했으며 구역은 약1,000㎡로 구역 내 에서 가야시대 석곽묘 15기, 고려시대 돌방무덤 1기, 토광묘 1기 등이 확인됐다.

이른바 가야시대 석곽묘 발굴양상들이 이렇댄다.




특히, 고려시대 돌방무덤은 장수지역 일원에서 처음으로 조사된 것으로 도굴이 되지 않은 온전한 상태로 발견됐다.

그 규모는 길이 2.5m, 너비 1m, 높이 0.9m 정도이며. 내부에서 청자광구병, 청자대접, 청자유병, 청동거울, 청동합, 청동뒤꽂이, 나무빗 등 최고급의 유물이 출토됐다.

장수지역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고려 시대 돌방무덤을 통해 당시의 묘제와 장제를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가 확보됨과 동시에 당시의 위상을 추정해 볼 수 있는 중요유적으로 평가된다.

이외에도 가야시대 석곽묘에서 장경호, 단경호, 발형토기, 금귀걸이, 소리나는 화살촉 등 지역의 역사문화를 밝힐 수 있는 소중한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됐다.

임민규 문화체육관광과장은 “금번 발굴 조사를 통해 삼봉리 고분군을 비롯한 장수지역 고대역사 유적지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소감을 밝히며 “앞으로 확장 발굴 조사·연구를 통해 지역을 떠나 우리나라의 고대사 연구에 한 획을 긋겠다”고 말했다.


이걸 보면 고려시대 석실묘 분포 양상을 짐작한다. 남북 장축이다.


고려시대 무덤은 모양이 돌방이라 했으니, 아마도 시체를 묻는 공간은 돌을 방처럼 쌓아서 만든 것이 아닌가 하며, 그 규모가 저렇댄다.

내부에서 청자류가 어느 위치에서 어떤 양상으로 발견됐는지 장수군을 통해 좀 더 상세한 발굴성과를 넘겨받았다.

남북 장축임이 확인되는데, 아마 남쪽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시점이 아닌가 한다.



이것이 문제의 고려시대 돌방무덤, 이른바 고고학이 자주 쓰는 용어를 빌리자면 석실분石室墳이라는 요물이라, 전후좌우 네 비름빡은 돌로 수직에 가깝게 쌓아올리고 바닥은 이렇다 할 마감 처리 흔적이 발견되지 않으며, 저 땅바닥에다가 관 혹은 관곽을 안치한 것으로 짐작되거니와, 지붕은 길로 넓적한 돌들로 시렁처럼 걸쳐 마감했음을 본다.

저 위짝으로 봉분이 있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발굴양상으로 보아 있었다 해도 그리 도드라진 흔적은 아니었다고 판단한다.

저 안짝에서 유물이 발견되는 양상은 도면이 없어 짐작은 어렵다. 자기류를 부장한 데다가 머리 부분인지 발치인지 모르겠다. 동그란 쇳덩이는 아마 관 고리가 아닌가 싶다.



이짝에서 수습한 유물들이다. 무덤에 묻은 자기, 지방 유력자 무덤에 묻은 자기류로는 양상이 그런 대로 좋은 급에 속하지 않나 한다.

저들 유물을 조사단에서는 "청자광구병, 청자대접, 청자유병, 청동거울, 청동합, 청동뒤꽂이, 나무빗 등 최고급의 유물"이라 소개했거니와 나는 저들 그릇에다가 무엇을 담았을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광구병은 꿀 단지 아닐까 하며 작은 병에는 화장품 아니면 약물을 담지 않았나 하고 접시류에다는 전이나 나물 혹은 생선을 담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자기류 양상을 보아 이 무덤은 12세기 전반기에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는 장남원 선생 지적질이 있었다.


***

목이 길고 구연이 저런 형태로 된 병은…과거엔 광구병이라고들 불렀으나..입이 크면 모두 광구인지라, 그리고 최소한 동아시아 내에서는 소통해야겠기에 반구장경병盤口長頸瓶이라고 합니다. (장남원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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