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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전시소식] 국립진주박물관 특별전 "공평과 애정의 연대, 형평운동"

by taeshik.kim 2023.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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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와 다른 너를 차별하고 못살게 굴면 안된다 - 고 우리는 배웠다.




그러나 그걸 실천하는 이는 드물다. 많은 경우 "내가 저것들보단 낫지"하는 자기위안을 위해서라도 '나와 다른 이'들을 아래로 내려다본다.

가축을 도살하고 고기와 가죽을 팔며 버들고리를 만들던 존재인 백정, 갑오경장(1894)으로 법제적 차별은 없어졌다고 하지만 그들을 에워싼 차별의 굴레는 사라지지 않았다.

호적에도 '도'라는 글자가 따로 적히고, 학교에도 갈 수 없었다.

예수님 아래 모두가 평등하다던 교회에서마저 백정은 차별을 받아야했다. 신도들이 우르르 빠져나가면서 백정이 간다면 우리는 천국 안 갈란다고 했다던가.




갑오경장 이후 한 세대가 지나서야 이 땅의 백정들은 차별없이 공정한 세상, 애정어린 인류의 양심을 부르짖으며 행동에 나섰다.

1923년, 저울처럼 공평한 세상을 꿈꾼 형평사가 진주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일제강점기 사회운동 중에서도 손꼽을 만큼 길게 이어졌고 그만큼 영향도 컸던 형평운동의 시작이었다.

이는 보편적 인권의 문제를 이야기했기에 명분이 뚜렷했고 그만큼 외부의 지지를 얻으며 꾸준히 진행될 수 있었다.

물론 그에 따른 반동도 많았고, 백정들 스스로의 인식도 제각각이었다. 형평운동이 백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도 아니었다(수백년 이어진 차별의식이 사회운동으로 그렇게 바뀐다는 것도 사실 말이 안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일제가 전시체제에 돌입하고, 형평사가 이익집단화하면서 거기 협조하게 되어 결국 형평운동 자체도 끝을 맺게 된다.

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어지간히 해소되는 것은 6.25라는 격동을 거치고서야 가능했다.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연 형평운동 100주년 기념특별전 "공평과 애정의 연대, 형평운동"은 차별없는 세상을 노래한 그때를 다시금 이야기한다.

형평운동 자체는 실패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게 의미없는 일이었나? 이 전시는 이야기한다. 전혀 의미없지 않았다고.

국립박물관이 이런 식으로 근대라는 시대를 보여줄 수도 있음을, 그리고 그 시절의 문제의식이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유감없이 드러낸다(진주 경상대학교박물관에서도 형평운동 특별전을 하고 있는데, 혹 진주에 오신다면 꼭 가보시라. 수준이 높은 한편 전시 포인트가 미묘하게 달라서, 이 둘을 비교해서 보면 아주 재미있다).

지금이야 정육점을 한다고 옆집 사람을 냉대하진 않지만, 동네에 이슬람 사원을 세운다고 그 앞에서 돼지고기를 굽고 하는 일은 있지 않은가.

성적 지향이나, 외모를 두고 사람을 따돌리고 괴롭히는 일은 또 얼마나 많고?

이에 100년 전, 차별을 하지 않고 이를 없애려던 사람들이 있었고, 자기에게 덧씌워진 차별의 굴레를 벗으려던 사람들이 있었음을 이 전시는 외치고 있다.

전시 곳곳에 붙은 <형평사 주지>의 첫 문장을 읽어본다.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요, 애정은 인류의 본량이라."

하나 더, 전시에 쓰는 패널의 글자가 작아서 읽기도 힘든 곳이 많은데, 여기 패널들은 글자 크기가 큼직하니 시원시원하다.

눈 나쁜 나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어린이나 나이들어 노안 온 분들을 위한 배려로 느껴진다.

배리어프리 차원에서도 앞으로 이 정도 크기 폰트를 전시에서 적극 고려해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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