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정창원 고문서 중 하나로 그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여기선 양식만 주목하기 바란다.
두루마리 문서다.
닥종이에 쓴 공문서.
문젠 말아 놓은 상태로 보관했다가는 무슨 문서인지 나중엔 알 수 없다는 거.
인덱스가 필요한데 그걸 두루마리 문서에선 저런 주걱모양 나무꽂이를 썼다.
이를 제첨축이라 한다.
함안 성산산성 6세기 신라 목간에서 제첨축이 확인됐다 해서 난리친 적이 있다.
그 난리는 내가 일본측 연구자 이성시 히라가와 미나미랑 주동했지만 그러면서 신라문서행정 고도화 운운했지만 다 개뻥이었다.
왜 신라가 저 시대에 문서행정을 안했다 생각하는가?
그 점에서 저 제첨축은 신라 원시미개주의 발로였다고 자아비판한다.
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도방위체제의 확립과 경도京都 - 사도四都체제 (0) | 2023.10.29 |
---|---|
신라 화랑은 오두미도 도교 교단 지도자 (0) | 2023.10.29 |
화상 치료에 쓴 달거리 피, 마왕퇴 백서의 경우 (0) | 2023.10.26 |
태항아리가 진단구라는 장난, 이제는 사라졌으면 싶다 (1) | 2023.10.25 |
마왕퇴의 귀부인 책 소개 <발굴기로 만난 중국 마왕퇴 유적>(2001) (0) | 2023.10.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