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근대 한국의 명필로 꼽히는 이는 많다. 그러나 소전 손재형(1903-1981)처럼 글씨를 자유자재로 즐겼던 이는 드물지 싶다.
<세한도>의 신화적 실화나 박정희(1917-1979)의 서예 스승이었다는 이야기는 젖혀두고라도, <충무공벽파진전첩비> 같은 대작 글씨건 아담한 소품이건(앞 사진), 그의 작품을 보면 획의 움직임이며 대담한 구도며, 그야말로 별격의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소전이 내세운 '한글 전서'는, 근거가 없다는 비판을 들었을 정도로 파격적이지만 또 그만큼 현대적으로 느껴진다.
붓으로 글씨를 쓴다는 게 너무나 어색해져버린 이 시대, 서예가들이 그를 잘 연구한다면 뭔가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2. 소전에게도 제자는 많이 있었다. 그중 평보 서희환(1934-1995), 장전 하남호(1927-2007) 이 두 사람 이야기를 약간 해보고자 한다.
이들은 모두 전남(평보는 함평, 장전은 진도) 출신으로 교직에 있었다.
둘은 국전 서예 부문에 여러 차례 입상했는데 특히 평보는 1969년 대통령상을 받았다(그 시절의 작품이 앞 사진). 이후엔 둘 다 국전 심사위원을 지냈는데 장전은 심사위원장까지 역임했다.
공통점이 꽤 많고 경력도 막상막하인 셈. 평보는 교수로써 서울에서 주로 활동했고 장전은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진도에 머물렀단 점이 차이라면 차이겠다.
이들은 개인전도 여러 차례 열었다.
3. 아주 묘하게도, 소전 문하의 쌍벽이라 할 만한 둘의 글씨는 퍽 다르다.
평보는 69년 대통령상 수상 이후 소전의 영향에서 서서히 벗어나 자기의 체를 정립해나간 반면(앞 사진), 장전은 소전체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고 그를 끝까지 묵수한다(아래 사진).
둘 다 다작을 했고 장전은 평보보다 오래 살았음에도 그러했다. 그만큼 장전에게 소전은 큰 산이었던 건지...
4. 평보와 장전 이 둘이 살았을 때, 누가 더 소전의 제자다웠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뒷날의 평가는 어떠할까.
평보는 '한글 추사'란 별칭을 얻을 만큼 인정받고, 근현대 서예전을 할 때마다 소환된다. 하지만 지금 장전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아 보인다.
글씨값은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장전의 글씨가 격이 낮지 않음에도(장전을 모욕할 의도가 아님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당대에는 장전도 대중적 인기가 높은 분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이 적지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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