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조선교육회
조선교육회는 이전에 경성교육회라 칭하였고, 1902년(명치 35) 5월 창립되어 회원은 겨우 200여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1910년(명치43) 12월 조직을 변경해서 조선교육회로 개칭하였으며, 조선 각 도에 걸쳐 1,400여 명의 회원을 가지게 되었다.
이어서 1915년(大正 4) 9월에 다시 조직을 변경하여 회명을 조선교육연구회로 고쳤으며, 회원은 3,105명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이에 그해 10월 30일 기관지 '조선교육연구회잡지' 제1호를 간행(중간에 잡지명을 조선교육으로 개칭)하여, 명실공히 조선의 유일한 교육기관으로서 면목을 갖추게 되었다.
이후 1922년(치 11) 2월, 새로 '조선교육령'이 발표되자 이 회는 각 도 교육회를 지회로 하고, 각 도 교육회는 각 부府·군郡·도道 교육회를 분회로 하는 방침으로 조직을 개편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40년(소화 15) 5월 말 현재 2만3,912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
또 앞서 기술한 '조선교육'은 위와 같이 1922년(대정 11)의 조직 개편을 계기로 그 해 5월호로 종간하고, 다시 그해 11월부터 '조선교육시보'를 발행하였다.
1925년(대정 14) 9월 이를 다시 폐간한 후 매월 [문교의 조선-을 간행하여 회원에게 무료 배포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덧붙이면, 이 회의 주된 사업은 잡지 '문교의 조선' 발행 외에 ①교육·학예의 조사, ②교육상 유익한 도서의 발행, ③강습회와 강연회 개최, ④은사기념과학관 경영, ⑤내지에 있는 조선학생의 지도·장려 등이다. [826]
국역 조선총독부 30년사 하권(7기) 미나미총독 시대, 1295쪽
국역 조선총독부 30년사(상), 박찬승·김민석·최은진·양지혜 역주 | 민속원 | 2018년 10월 23일, 604쪽.
***
조선교육회는 총독부 학무국에 본회를 두고 각 도교육위원회를 지회로 두었으며, 그 밑에 각 府·郡·島교육회를 분회로 설치하였다.
임원은 회장·부회장·평의원 및 간사를 두었다. 역대회장은 정무총감이 맡았고 부회장 2인을 두었는데 학무국장과 조선인이 각각 맡았다.
회원은 명예회원, 특별회원, 보통회원이 있었는데 명예회원은 학식과 덕망이 우월한 자, 특별회원은 특별한 공적이 있는 자로 규정하였다.
보통회원은 교육에 종사하는 일반 인사로 1923년 말 8,860명이었다. 1926년부터 회원 모집운동을 전개하면서 1만 명을 넘게 되었다.
이후 1939년에 2만 명을 돌파하였고 1940년에는 3만 명에 달하였다. (이 추가설명 부분 역시 이주화 선생 도움이 있었다.)
*** previous article ***
은사기념과학관恩賜記念科學館, 대정 천황 내탕금으로 비롯한 한국과학의 효시
'역사문화 이모저모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분 잡친 정약용 묘 쇠말뚝[2005] (5) | 2024.02.27 |
---|---|
임진년에 쇠말뚝을 꽂은 명나라 술사 (1) | 2024.02.27 |
은사기념과학관恩賜記念科學館, 대정 천황 내탕금으로 비롯한 한국과학의 효시 (2) | 2024.02.27 |
거란의 수도 방위군 (1) | 2024.02.26 |
아동 열명을 통역사 전문 양성요원으로 거란에 보낸 고려 (16) | 2024.02.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