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쇠말뚝이 일제와 하등 관계가 없음을 설파한 글을 올린 것이 (2005) 4월 28일. 그러다가 경기 남양주발로 정약용 묘에서 쇠말뚝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 어제, 그러니까 4월 30일.
그 소식 마지막 구절에 보니 남양주 市 관계자 말을 인용한 “일제의 정기 말살 의도” 운운한 언급이 보이기에 회사 내부 게시판에 “쇠말뚝과 일제는 하등 무관계하다”는 글을 올린 바 있다.
이 글은 이내 130여 조회수를 기록한 시점에서 내려버렸으니, 그 까닭은 혹여 이 글로 인해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동료기자를 비판한 것으로 간주될 여지가 있지 않나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한데 돌아가는 꼬락서니는 보아하건대 내가 예고했던 대로 이 쇠말뚝은 무속인 소행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내가 언제인가 이 쇠말뚝 일제 유산 운운하는 근거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추적한 적이 있는데 아직도 그 뿌리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기분은 영 찜찜하다. 점쟁이라도 된 기분이라서?
원래 쇠말뚝을 꽂는 전통은 도교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은 무속사회 습속이라.
이런 전통은 조선시대 문헌에도 다수 빈출되고 있음을 나는 확인한 바,
그것이 일제의 만행 운운하는 현재의 상식들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확신은 거기에서 비롯됐다.
이 쇠말뚝이 일제의 문화유산이 되기 위한 첫째 조건은 그것이 일본적 전통이어야 한다.
자기네에게 그런 전통도 없는데 쇠말뚝을 꽂아서 민족정기를 해하는 일이 가당키나 한 소린가?
그래서 여러 문헌과 관련 연구자를 통해 일본에서의 습속을 알아보니 쇠말뚝에 대해
한결같이 “무신 소리니껴?”라는 식의 반응뿐이었다.
일본에서 풍수지리설은 내 알기로는 나라 시대 이후에 거의 종적을 감춘다.
천 년 전에 멸종한 풍수지리설이 어찌 이 땅 조선의 강토를 쇠말뚝으로 난동을 낸다뎌냐?
일제 잔재 청산. 그 당위성이야 반대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하지만 애꿎은 떡두꺼비가 양산되고 있으니,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전통이 일제의 유산으로 규정되어 퇴출되는 희대의 비극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남대문 동대문이 그렇고 민비가 그렇고 나아가 秘苑은 아예 종적을 감춰버렸다.
그래서 비원 대신 後苑이라나?
에랏, 비원이 똥 싸는 곳이냐? 후원이게? (2005.04.30 09:04:42)
***
비원 본래 이름이라는 후원後苑은 창덕궁 특정 구역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뒤안이라는 일반명사다. 곧 후원이란 뒤안이라는 뜻에 지나지 않는다.
한데 저런 거지 같은 논리로 일제잔재를 청산한답시며 완장차고 날뛴 놈들이 저명한 조선사연구자들이라는 점이 기가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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