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건국된 후 발전한 유학의 성장은 눈부신 바가 있다.
조선의 16세기 말, 임란 이전의 유학의 수준은 상당히 높다. 이미 이 당시 중국유학, 중국성리학이 가지고 있던 상당수의 문제의식과 현실참여는 조선에서 구현되었다고 본다.
임란이후의 조선유학은 쇠퇴의 역사다.
예학은 좋게 보면 근대적 논리학의 편린을 볼 수 있고 조선유학의 독특한 부문을 형성한 것이 사실이지만, 유학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성리철학 자체도 16세기 보다 더 깊이 들어간 것은 사실이지만 꼭 그런 철학적 논쟁이 필요했는가 하는 의문이 있다.
사실 16세기 말 조선유학이 발전하여 이룩해야 될 다음 단계는 엉뚱하게도 조선땅이 아니라 일본땅에서 17-18세기에 벌어졌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성리학 극성기의 다음 단계는 내부 분화에 의해 이단적 고학파가 나와야 정상인데 조선에서는 출현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정조시대 그 시대의 소위 "조선후기의 르네상스"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다양한 유학적 사유가 발달하였음도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은 있지만, 이것은 성리학의 분화 진전이지 "근대성"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정조가 시대착오적인 "문체반정=고문으로의 회귀"를 왜 들고 나왔겠는가?
그는 성리학 탈레반주의를 옹호하는 군주 이상의 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조는 결코 근대적 계몽군주가 아니다.
영-정조시대 소위 화려한 "문치"와 "르네상스"는 근대성과는 무관하다는 말이다.
무서운 것은 바로 같은 시대, 일본에서 성장하고 있던 고학파를 중심한 이단적 유교학파들-.
여기에 근대성이 싹트고 있었다는 말이다.
동아시아 전체로 본다면 동양 삼국의 유학에서 일본의 유학에서 근대성이 싹트고 있었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더 자세히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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