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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조선후기, 서학은 "이단 유학"이었다

by 초야잠필 2023.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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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조선의 선비들은 모두 바보였다는 말인가? 

조선시대의 기록을 보면 그 시대 선비들의 고도의 사유에 공감하는 바 많아진다. 

조선 후기의 선비들도 바보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조선에서는 일본 고학파 같은 "이단유학"이 나오지 않았을까? 

왜 "성리학"을 묵수하는 모습으로 나라가 망할 때까지 간 것일까? 

유심히 당시의 사상의 흐름을 보면 눈에 띄는부분이 있다. 

바로 "서학"이다. 

고도의 성리학 교육을 받은 유학자들이 어느 아침에 홀라당 서학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것도 선교사도 없이, 전해진 책만 읽고, 

교황은 이 "선교사도 없이 교회가 일어난 것을 듣고" 기적이라며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지만, 

그것이 아니라 조선의 유학자들에 있어 서학이란 "근대성을 갖춘 이단 유학"이었던 셈이다. 

성리학의 사상체계와 서학, 그리고 서양철학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를 보면 양자가 얼마나 유사한 것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조선의 선비들이 서학을 읽고 순식간에 이에 귀순한 이유는, 그 논리가 자신들이 어렸을 때 부터 배운 성리철학과 매우 유사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일본의 "고학파" 같은 이단-근대적 유학의 맹아를 못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서학에서 그런 근대성을 본것이다.

조선의 선비들에게는 서학이야 말로 "근대성을 갖춘 이단 유학- 정체에 빠진 성리학을 대체할 수있는 그 무엇"으로 보았다는 말이다. 

조선후기의 근대성? 

정다산에게는 없다. 

조선후기의 근대성의 씨앗은 "서학쟁이"들에게 있다. 

 P.S.1) 작금의 "조선서학사"는 천주교의 순교사적 기술에 의해 실상이 많이 감추어져 있다고 본다.

내가 보기엔 조선의 서학자-성리학에서 천주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모두 "이단 유학자"들이다.

이들은 유학자로서의 사고방식을 포기한 적이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도 서학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핤 있었던 것인데, 마치 "고학"이 유학이면서도 이단이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P.S.2) 서학은 불교도와 유학자 누가 더 쉽게 공명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정답은 필자가 보기엔 유학자이다.

왜? 사고와 철학체계가 양자가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나중에 한 번 쓸 기회를 갖겠다. 

P.S.3) 조선후기 서학은 넓게 보아 유학의 외연에서 해석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런 시도를 거치면 아마 서학은 완전히 달라 보일것이다. 

어째서 한국의 천주교는 성리학을 하드하게 교육받은 선비들 사이에서 시작했는가? 서학은 "이단유학"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고학파가 일어났듯이 조선에서는 "서학"이 성리학자들 사이를 풍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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