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조선의 선비들은 모두 바보였다는 말인가?
조선시대의 기록을 보면 그 시대 선비들의 고도의 사유에 공감하는 바 많아진다.
조선 후기의 선비들도 바보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조선에서는 일본 고학파 같은 "이단유학"이 나오지 않았을까?
왜 "성리학"을 묵수하는 모습으로 나라가 망할 때까지 간 것일까?
유심히 당시의 사상의 흐름을 보면 눈에 띄는부분이 있다.
바로 "서학"이다.
고도의 성리학 교육을 받은 유학자들이 어느 아침에 홀라당 서학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것도 선교사도 없이, 전해진 책만 읽고,
교황은 이 "선교사도 없이 교회가 일어난 것을 듣고" 기적이라며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지만,
그것이 아니라 조선의 유학자들에 있어 서학이란 "근대성을 갖춘 이단 유학"이었던 셈이다.
성리학의 사상체계와 서학, 그리고 서양철학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를 보면 양자가 얼마나 유사한 것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조선의 선비들이 서학을 읽고 순식간에 이에 귀순한 이유는, 그 논리가 자신들이 어렸을 때 부터 배운 성리철학과 매우 유사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일본의 "고학파" 같은 이단-근대적 유학의 맹아를 못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서학에서 그런 근대성을 본것이다.
조선의 선비들에게는 서학이야 말로 "근대성을 갖춘 이단 유학- 정체에 빠진 성리학을 대체할 수있는 그 무엇"으로 보았다는 말이다.
조선후기의 근대성?
정다산에게는 없다.
조선후기의 근대성의 씨앗은 "서학쟁이"들에게 있다.
P.S.1) 작금의 "조선서학사"는 천주교의 순교사적 기술에 의해 실상이 많이 감추어져 있다고 본다.
내가 보기엔 조선의 서학자-성리학에서 천주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모두 "이단 유학자"들이다.
이들은 유학자로서의 사고방식을 포기한 적이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도 서학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핤 있었던 것인데, 마치 "고학"이 유학이면서도 이단이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P.S.2) 서학은 불교도와 유학자 누가 더 쉽게 공명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정답은 필자가 보기엔 유학자이다.
왜? 사고와 철학체계가 양자가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나중에 한 번 쓸 기회를 갖겠다.
P.S.3) 조선후기 서학은 넓게 보아 유학의 외연에서 해석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런 시도를 거치면 아마 서학은 완전히 달라 보일것이다.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의 사적 기록 말살의 역사 (0) | 2023.07.24 |
---|---|
조선 서학은 순교사관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0) | 2023.07.23 |
조선유학의 전성기는 16세기 말 (1) | 2023.07.23 |
정약용의 논어고금주 (1) | 2023.07.23 |
늑대도 짖는가? (1) | 2023.07.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