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흔히 조선 막사발을 두고
무위 무념의 소산,
인위가 극소화된 자연적 미의 소산 등등으로 찬상하는 경우를 보는데,
무위 무념 자연적미, 인공의 극소화
이런 것이 조선중기 한국사에서 나올 수 있는 사상이 맞기는 맞는가?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에 우리나라 사상의 어느 구석에 무위 무념 자연, 인공미의 극소화 같은 흐름이 있었다는 건가?
이러한 흐름은 유교적 흐름이라기 보다는 외려 도교나 불교적 사상의 영향에 더 가깝다고 보는데
알다시피 조선은 여말선초에 불교를 이미 작살을 내놔서 이런 사상이 똬리를 틀고 나올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본다.
막사발이 나오던 시기.
흔히 이야기 하는 바 무위 무념 자연, 인공의 극소화 등등 막사발과 관련된
아니. 그 그릇과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좋다.
그 그릇의 제작과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좋으니
최소한 그 그릇을 찬상할 때 나오는 이야기와 큰 줄기에서 흐름을 같이하는 사상만이라도
한국사에서 발견하여 같이 놓고 그릇도 자랑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작업 없이는 필자는 조선 막사발-.
일본미술사라고 본다.
*** Editor's Note ***
막사발을 묵사발한다.
이 관점 논의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반응형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헤이안쿄: 서기 800년 경 - 서기 1000년 경 (0) | 2024.01.19 |
---|---|
영감님들과 젊은이들의 분업 (1) | 2024.01.19 |
당신은 확신할 수 있는가 (0) | 2024.01.19 |
조선의 사발과 센노 리큐千利休 (0) | 2024.01.19 |
대중이 만든 사무라이 정신 (0) | 2024.01.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