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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800년 경, 헤이안쿄가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의 모습이다.
바둑판모양으로 구획된 조방제 모습이 확인된다. 이 헤이안쿄가 헤이안 말이 되면 어찌 되느냐.
1000-1200년 경의 헤이안쿄다.
이때가 되면 도성 서쪽 절반이 날라간다. 이 지역은 배수가 잘 안 되어 사람이 살기 부적합했기 때문이다.
왕성도 이 시기에는 원래 있었던 주작대로 북쪽 끝에서 동쪽으로 이동하여 현재의 쿄토고쇼 지역으로 옮겨간다.
처음 건립되었을 때는 건물이 없던 가모가와 동쪽에 거주지와 절들이 들어선다.
실제로 무가정권 세력자들은 원래는 헤이안쿄 영내가 아닌 가모가와 동쪽에 살았다.
조방제 도시구획?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에 몇백년만 지나면 다 사라진다.
쿄토는 지금까지도 서기 800년 당시의 조방제가 완연한 쿄토의 모습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조방제가 시행되던 때에 비해 조방제가 무너진 시기의 쿄토는 이전보다 열등한가. 전혀 그렇지 않다.
도성 지리의 자연적 지세를 따라 돌아갔을 뿐이다.
조방제냐 아니냐는 도시의 성장에 있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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