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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대동보 기사를 옛날 신문에서 찾아보면
그 시절에도 대동보는 만드는 과정에서 시끄러워서
대동보를 둘러싸고 소송전과 상호비방이 있던 기사를 보게 된다.
일제시대 들어오면서 족보의 규모가 이전보다 더 커져서
그야말로 수십만의 종원을 거느리는 거질의 족보로 확대되고
이전과는 달리 족보를 만드는 측과 들어가는 쪽의 갑을이 바뀌게 되었는데
이렇게 공수전환이 된 가장 큰 이유의 하나가,
구한말 이후 호적이 혁파되면서 근대적 호적 기록이 시작되어
사람들이 죽어라고 족보에 들어가려고 애쓸 이유가 사라져 버렸다는 데 있겠다.
조선시대만 해도 호적은 군역과 관련이 있고,
호적을 바꾸려면 족보부터 바꿔야 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족보에 이름을 올리려 하고 있었지만,
20세기 들어오면서 호적이 지금의 모양으로 바뀌면서
족보에 굳이 이름을 올려야 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격감하게 된 것이다.
결국 20세기 족보라는 것도 출판하는 측과 독자라는 측면에서 볼 때,
출판하는 쪽은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종원을 늘려야 하고,
종원의 입장에서는 들어가도 그만, 아니라도 그만인 상태가 되었으니
자연스럽게 갑을이 바뀌고, 수단하니 이름은 보냈지만
돈은 못내겠고, 넣든지 말든지 맘대로 하라는 사람들까지 나오게 된 것 아니겠는가.
우리나라 족보는 그 자체 한국의 오래된 전통으로 생각들 하지만,
의외로 지금의 대동보는 그 성격 상 전통이라기 보다는
근대의 산물이라는 데 주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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