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나미비아 빈트후크에서 열린 제10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한국이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과 공동 등재신청한 줄다리기가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근자에 들어 세계유산이나 인류무형유산 흐름을 보면 국경을 뛰어넘는 이른바 월경유산에 대한 관심이 많고, 등재 역시 그에 맞추어 특정한 국가가 아닌 특정 지역에 걸치는 유산을 공동등재하는 흐름이 강화한다.
이번에 북한에서는 김장만들기를 등재했다. 이 역시 이런 흐름에 따른다면, 기 등재된 남한의 김장만들기에 대한 '확장'의 개념이었으면 했지만, 북한에도 소위 자존심이 있어 이리 처리된 줄로 안다.
줄다리기라 하지만, 국내에서 보면 이런 줄다리기 문화가 현존하는 데가 제법이다. 한데 그 속내를 보면 이 줄다리기 등재를 가능케 한 결정적인 동인은 당진의 기지시줄다리기다.
줄다리기가 세계유산이 되기까지에는 당진시 당국의 헌신적이면서도 눈물겨운 투쟁과 쟁투가 있었다. 우리는 이를 잊어서는 안된다.
더구나 이것이 등재되기까지 당진시 학예사 한 명의 눈물겨운 분투가 있었다는 사실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를 특정화하고 실명화해서 이름을 드러내면, 그에 따른 각광보다는 견제가 따르기 마련이라, 내가 그의 이름을 이곳에서 부르지는 않는다.
이 학예사의 분투를 역사는 기억해야 한다.
명랑인가 하는 영화를 보면, 명랑대첩에서 대승한 조선 해군이 거북선 안에서 이런 말을 한 기억이 또렷하다.
"우리 후손들은 우리가 이리 고생한 걸 알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를 죽을 때까지 기억하련다.
(2015.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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