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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지석誌石, 저승세계로 가는 도로 안내판

by taeshik.kim 2022.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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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誌石은 묘지명墓誌銘 일종이나 무덤 밖에서 여기가 누구 무덤임을 표지하는 신도비神道碑 혹은 갈기碣記碑와는 달리 무덤 안에다가 시체랑 같이 묻는 표식이라는 점에서 갈 길을 달리한다.

그 구체하는 매장 위치는 일정한 패턴이 없어 중국의 경우 현실玄室 통로 쪽에 두는 관례가 있으나 고려나 조선의 경우는 봉분 흙더미나 그 바깥 묘역에 묻는 일이 많았으니

힘께나 있는 집안에선 신도비랑 지석을 동시에 세우거나 묻었으나 아무래도 신도비 쪽이 돈이 많이 들고 또 그걸 세우는 자격에 제한도 있어 지석만 넣는 일이 많았으니 그 내막이 무엇이건 여기가 누구네 무덤임을 표식하는 구실에는 변함이 없다.




경기도박물관이 이런 지석만을 조명하는 특별전을 꾸미고선 사람들을 유혹한다.

이런 자리를 장만했다기에 자칫 무미하기 짝이 없을지도 모르는 그런 지석들을 박물관이 어찌 요리했을지가 궁금했거니와

죽 훑어보니 아 지석이 이리 모으니 이리도 빛나는구나 하는 찬탄을 자아낸다.




주자가례라든가 상례비요 같은 의례에서 지석을 어찌 해야하는지를 들여다 봤으니 이는 조선시대 지석 문화 전개가 이런 의례를 절대기반으로 삼는 까닭이다.

다만 지석은 저들 의례 집성 이전에 이미 유행이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조선시대 지석이 전대인 고려시대 그것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이 소재다. 고려가 돌덩이 일색인데 견주어 조선은 도자기로 바뀌어갔으니 무슨 개떡 같은 이유가 있겠는가?

돈! 돈! 돈!

이 있을 뿐이다.

돌댕이는 돈이 무지막지 들었다. 그에 견주어 도자기는 달랐다,

조선시대 지석은 그런 까닭에 시대 변화를 민감하게 반영한다. 상감청자 지석이 없는 이유는 이런 시대유행에 말미암는다.





사가정 묘지도 있다.

쏴리 길어져서 밀단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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