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EWS & THESIS

김태식이 기록한 권중달 자치통감 완역 실록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2. 12. 8.
반응형

28권으로 재탄생한 '자치통감' 번역본…판매수익, 장학기금 기부
김예나 / 2022-12-08 07:33:00
권중달 교수 50여년 연구·번역에 '이정표'…"정본 의미 지닌 마지막 판본"

https://k-odyssey.com/news/newsview.php?ncode=179534266870581

28권으로 재탄생한 ′자치통감′ 번역본…판매수익, 장학기금 기부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중국 북송시대의 역사가 사마광(1019∼1086)이 쓴 ′자치통감′(資治通鑑)의 한글 완역본이 새로운 구성으로 출간됐다. 도서출판 삼화는 최근 번역서 27권과 해설서

k-odyssey.com



자치통감 완역이라는 오직 한 길만을 향해 반세기 열정을 쏟아부은 권중달 중앙대 명예교수가 또 하나의 금자탑을 쌓았으니, 2010년 완간한 완역 자치통감을 저와 같이 이번에 28권짜리 애장본으로 출간하는 한편, 그에서 발생하는 이익은 장학재단에 투척키로 하는 결단을 내렸다 한다.

이 자치통감 완역 대장정을 나는 비교적 가까이서, 그리고 장기간 그 돌입에서 완성까지를 지켜보며, 그에 이르는 과정과정을 기록으로 남겼으니, 아래 첨부하는 내 기사들은 그 자체 자치통감 완역 열전이라 불러도 손색없다고 본다.

고역을 마다한 선생의 헌신에 다시금 고개를 숙이며 후학으로서도 감사하다는 말을 거듭거듭 남긴다.


아래 2000년 3월 기사는 권중달 교수가 자치통감 완역에 나섰다는 타전이었다.


2000.03.23 10:48:00
<「자치통감」완역 대역사 권중달 교수>

(서울=연합뉴스) 김태식기자 = 생각은 있었지만 지금까지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누군가는 꼭 해야했다.

중국사상사 전공인 중앙대 사학과 교수 권중달. 1941년생, 59세니까 25년간 봉직해온 교수직도 앞으로 5,6년이면 그만이다.

권중달 선생


지난 98년 '역사학의 대중화 문제'를 주제로한 심포지엄이 개최됐을 때 발표에나선 그는 "역사지식이 대중과 격리될 때 사회도 불행해지고 역사학계도 불행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자명하다"면서 역사를 대중 앞에 돌려놓자고 외쳤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도대체 무엇을,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는 중국 역사기록이지만 한국학, 동양학을 위해서는 필수문헌인 「자치통감」(資治通鑑)을 모조리 한글로 옮기자는 원대한 꿈을 품었다.

중국 송나라 사마광(司馬光.1019~1086)이 전국시대인 주(周) 위열왕(威烈王) 23년(기원전 403) 이후 당나라가 지리멸렬하고 송나라가 서기전 오대(五代)까지 1천362년간의 역사를 편년체(編年體)로 기록한 중국 통사.

말이 완역이지 전체 294권이나 되고 사마천의 「사기」보다 훨씬 길고 방대한 「자치통감」을 옮긴다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 전문지식을 필요로 한다.

권중달은 누군가는 해야 했으나 지금까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이 「자치통감」 완역이라는 대장정을 꿈으로만 그칠 게 아니라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는 완역 분량은 단행본으로만 25권. 이처럼 방대한 번역을 정년퇴임 때까지 마무리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학계와 학교에 보답하고 역사를 대중 앞으로 돌리기 위해 쓰러질 때까지 할 작정이다.

이제 그의 원대한 포부는 머리와 가슴속에서만 살아 숨쉬는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됐다. 완역본 25권으로 계획한 그 첫 작품, 이 땅에 한글로는 처음 번역된 「자치통감」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책 제목은 「서리가 밟히면 물 어는 시절이 오리니」라는 아주 멋진 「주역」 한 구절에서 따왔다.「자치통감」 완역본 시리즈 중 첫 작품이라는 냄새는 제목만으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왜 「자치통감」을 팽개치고 이런 제목을 삼았을까? 그 해답은 바로 역사대중화에 있다. 「자치통감」이라고 하면 일반독자들이 우선 질려 버린다.그래서 별 거부감없이 다가서게끔 제목 하나 잡는데도 이렇게 세심한 배려를 했다.

제목 뿐만 아니다. 번역도 아주 쉬운 용어를 골라 썼다. 그렇다고 전공자들을위한 배려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각주를 달아 심도있는 연구가 되도록 했다.

"각주를 보기 싫으면 건너뛰면 된다.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을 때만 각주를 봐라" 이것이 권중달이 주장하는 번역본 「자치통감」이다.
이번에 나온 첫 작품은 「자치통감」 294권 중에서도 춘추시대 강국이었던 진(晉)이 세 나라로 분열돼 전국시대가 펼쳐지던 기원전 403년 이후 이 혼란기를 평정한 기원전 207년까지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는 올해안에 우선 2,3권을 더 내기로 하고 앞으로 매년 박차를 가해 정년퇴임 즈음해서는 대장정을 마무리할 작정이다.

사실 「자치통감」 번역이라면 국내에서 권중달만한 적격자를 찾기는 힘들다. 우선 석.박사 논문을 비롯해 자치통감을 주제로 한 논문이 20여편을 헤아리고 있다.

특히 대만 국립정치대학에서 통과된 박사논문은 자치통감에 나타난 사상이 「삼국사기」나 「동국통감」 같은 한국기록에는 어떻게 투영됐는지를 탐구한 역작으로 혼자 힘으로는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번 대장정의 밑거름이 됐다.

왜 그가 자치통감 완역에 나서게 됐는지 그 까닭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데 이런 번역을 게을리하고 있는 한국역사학계가 경청할 만한 대목이다.

"역사학을 공부하겠다는 사학과 학생들조차 대부분 한 권의 역사책도 읽어본 사람이 없게 되었다. 이렇게 역사학을 공부할 수 있는 저변이 확대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런 구체적인 사실(史實)도 모른 채 강의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을 상대로 역사적 실례를 들어가면서 아무리 심오한 역사적 의미나 시대구분을 강의한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난 25년간 역사학 강의를 하면서 전문적인 논문 몇편을 쓰면서 교수직을 유지하는데는 성공하였지만 사회를 향한 교육자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본다면 다른 작업을 하는 것보다 경제적으로나 학문적으로 효과가 적을 지 모를 이 작업을 하기로 했다" (사진있음)
taeshik@yonhapnews.co.kr (끝)



아래는 저에 즈음해 새삼스레 자치통감이 어떤 책인지를 정리해 봤다.

자치통감사정전훈의資治通鑑思政殿訓義



2000.03.23 15:06:00
<「자치통감」은 어떤 책?>

(서울=연합뉴스) 김태식기자 = 중앙대 권중달 교수가 완역에 들어가 그 첫 성과물을 내놓은「자치통감」(資治通鑑)은 사마천의 「사기」(史記), 반고의 「한서」(漢書)와 함께 중국역사학을 대표하는 명저로 꼽힌다.

문·사·철 즉 문학(文.예술)과 역사(史)와 철학(哲)이 혼연일체가 되는 독특한 동양학 풍토에서 「자치통감」 또한 문학가이며 정치가이자, 철학자이며 역사가이도 했던 중국 송나라 사마광(司馬光.1019~1086)이 완성한 역작이다.

그 문장과 여기에 투영된 철학이 훌륭해 문장학과 역사철학의 모범으로 꼽히기도 하는 「자치통감」은 엄밀히 분류하자면 역사기록이다. 제목은 "다스림의 바탕이 되는 것으로 전시대를 통틀어 귀감이 된다"는 정도의 뜻을 갖고 있다.

자치통감은 동양 역사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바로 편년체(編年體)의 장을 열었기 때문이다. 편년체란 말 그대로 연대별로 사건을 서술하는 역사서술 체제를 말한다.

자치통감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동양역사학의 모범은 뭐니뭐니 해도 사마천이「사기」에서 사용한 기전체(紀傳體)였다.

기전체란 제왕의 전기인 본기(本紀), 제후를 비롯한 신하의 전기인 열전(熱傳)을 중심으로 해서 연표와 세계표 등으로 된 표(表), 사회의 중요한 현상을 기술한 지(志) 등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삼국사기」가 바로 기전체다.

어떻든「자치통감」은 전국시대가 개막되는 기원전 403년 이후 당나라가 무너지고 송나라가 서는 오대(五代)시대까지 1천362년간의 중국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기술대상 연대가 워낙 길기 때문에 양 또한 엄청나다. 권중달 교수는 이것을 전부 한글로 옮겼을 경우 25책 약 1만쪽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동양의 옛 역사책이 대개 그렇듯 「자치통감」 또한 교훈적인 성격이 강하다.옛날에 이런 이런 일이 있었는데 황제시여 이런 나쁜 것들은 본받지 마시고 좋은 일들만 되새기고 명심하시어 부디 성군(聖君)이 되어 주십사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렇다고 「자치통감」이 딱딱한 도덕교과서냐 하면 그렇지 않다. 역사에 명멸했던 인물들의 이상과 성공, 음모와 야망, 좌절과 패배가 살아 숨쉬는 듯 하다.

「자치통감」이 중국 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서도 필독서가 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자치통감」은 편찬 직후 고려에 바로 수입됐음이 확실한데 1145년 편찬된「삼국사기」가 중국기록 중 이것을 가장 많이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문학이나 역사학 같은 한국학 전공자는 「자치통감」을 읽어야 한다. 특히「자치통감」에는 국내 기록에는 없거나 없었던 한국고대사 관련 기술이 군데군데 있어 역사학 전공자들에게 어떤 면에선 「사기」보다 먼저 읽어야 할 책으로 꼽힌다.

그러나 중국사사상사 전공인 권중달 교수 지적처럼 「자치통감」은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본고장인 대만에서조차 통독한 사람이 몇명 되지 않을 정도로 전통시대에누렸던 확고한 지위가 흔들리는 것만은 사실이다.
taeshik@yonhapnews.co.kr (끝)



다음은 저렇게 담대하게 시작한 완역 사업이 2년 만인 2002년 9월에 한대漢代 편을 완간했다는 소식이다.

자치통감강목 완질 59책59권. 조선 제4대 임금 세종(재위 1418~1450)시대에 임금과 신하들이 토론하는 장인 경연(經筵)에서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2


2002.09.10 11:08:12
「자치통감」 한나라편 완역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중국사 전공인 중앙대 권중달(61) 교수가 오는 2005년 완성을 목표로 대장정에 돌입한 「자치통감」(資治通鑑) 완역 사업이 최근 한(漢)나라편 3권을 냄으로써 본궤도에 올랐다.

「자치통감」은 중국 송나라 사마광(司馬光.1019-1086)이 전국시대인 주(周) 위열왕(威烈王) 23년(기원전 403) 이후 당나라가 지리멸렬하고 송나라가 서기 전 오대(五代)까지 1천362년간의 역사를 편년체(編年體)로 기록한 장대한 중국 통사.
전체 294권, 사마천의 「사기」보다 훨씬 길고 방대한 「자치통감」 완역본은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선을 보였으나 한국 동양사학계에서는 여기에 소비되는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 인력 및 전문지식 부족 등으로 완역은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이 난공불락에 과감한 도전장을 던진 이가 권중달 교수였다.
그는 지난 2000년 3월 그 첫 성과물로 춘추시대 강국이었던 진(晉)이 위(魏).한(韓).조(趙) 세 나라로 분열돼 전국시대가 펼쳐지던 기원전 403년 이후 진(秦)이 이 혼란기를 평정한 기원전 207년까지(권 제1-8권)를 완역한 바 있다.

당시 이 역주본은 세화출판사에서 「서리가 밟히면 물 어는 시절이 오리니」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으나 얼마 뒤 「자치통감」으로 제목을 바꿨다.

출판사나 권 교수 모두에게 엄청난 부담인 「자치통감」 역주작업은 역사전문 출판사인 푸른역사에서 새 둥지를 틀어, 전한(前漢)시대편 30권(권 제9-38)이 이번에 세 권으로 나온 것이다. 200자 원고지 7천500장에 달하는 분량이다.

역주 과정에서 희소식도 없지 않았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이 주관한 「자치통감」 역주사업에 다름 아닌 권중달 교수가 선정됐기 때문이다.

권 교수가 이끄는 역주 팀과 출판사는 상세한 주석과 해설에 주력했다. 이를 위해 우선 각 권 첫머리에 한나라 시대 관련 유적과 유물 사진을 실었으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는 총 39컷에 달하는 지도와 도표를 배치했다.

또 각 권별로 50-100여개에 달하는 미주(微註)를 달아 당시 지명과 현재 지명의 관계, 이해가 쉽지 않은 제도나 습속 등을 상세히 풀었다.

사마광이 장장 17년을 투입한 「자치통감」은 '정치에 자료가 될 만한 통시적인 거울'이라는 뜻을 지닌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철저히 당대와 후세를 위해 경계하고 교훈하는 역사학을 창출하려 했다.

모든 텍스트가 그렇듯이 「자치통감」 또한 북송시대의 기념비(monument)이자, 사마광의 기념비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그 실체와 목적성이 보인다.

이른바 보수파로 분류되는 사마광은 급진개혁파라고 할 수 있는 왕안석과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였는데 「자치통감」에는 왕안석의 급진주의에 대한 비판이 곳곳에서 스며나고 있다.

권 교수는 「자치통감」 이해를 극대화하기 위해 별도의 「자치통감」 개설서이자 안내서인 「욱일승천하는 중국의 힘, '자치통감'에 있다」는 단행본을 동시에 출간했다.

여기서 권 교수는 「자치통감」이 한반도에 유입돼 어떻게 활용되고 이해되었는지 그 과정을 면밀히 고찰했다.
taeshik@yna.co.kr
(끝)

자치통감



이어 이 사업은 진대晉代 편을 완성한다.


2007.07.10 15:27:15
<사마광의 자치통감 진대(晉代)편 완역>
중앙대 권중달 교수 완역본 4권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임금이 되어 자치통감(資治通鑒)을 모르면 정치를 잘 하려 해도 잘 다스릴 수 있는 근원을 알지 못하게 되며, 혼란스러움을 싫어하면서도 그런 혼란을 막는 방법을 알지 못할 것이다. 또, 신하된 자가 자치통감을 알지 못하면 위로는 임금을 섬길 줄 모르고, 아래로는 백성을 다스릴 수 없다."

북송시대 정치거물이자 문단거인인 사마광(司馬光.1019-1086)이 19년을 쏟아부어 완성한 역사서인 자치통감을 해설한 '자치통감음주'(資治通鑒音注)를 완성한 직후 저자인 호삼성(胡三省.1230-1302)이란 지식인이 한 말이다.

이 말이 단순한 자치통감 찬사가 아니었음을 동아시아 역사가 입증한다. 마오쩌둥 또한 한시도 자치통감을 손에서 뗀 적이 없다는 일화가 전한다.

공자가 편찬했다는 노나라 역사서인 춘추(春秋)를 존숭한다는 의미에서 춘추가 마침표를 찍은 지점에서 시작해 북송시대 직전 오대(五代)시대에 이르는 중국사를 편년체로 엮은 자치통감은 전체 294권으로 그 분량이 방대하다.

자치통감을 완독한다는 것은 사기(史記)와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 이래 중국 역사학이 구축한 24사 중 무려 19종을 완독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지닌다. 자치통감에 포함되지 못한 24사는 송사(宋史)ㆍ요사(遼史)ㆍ금사(金史)ㆍ원사(元史)ㆍ명사(明史) 등 5종에 지나지 않는다.

오는 2009년 전 32권으로 예정된 자치통감 완역을 목표로 하는 권중달 중앙대 명예교수가 올초에 후한(後漢)시대 편과 삼국시대 편을 선보인 데 이어 서진(西晉.265-316)ㆍ동진(東晉.317-420) 시대를 합친 진대(晉代) 편 자치통감 완역본 4권(완역본 기준 제9-12권)을 최근 내놓았다.

진대 편은 자치통감 원전에서는 권79-118의 총 40권 분량에 해당한다.

구체적으로는 사마염(司馬炎)이 265년 위(魏) 왕실을 무너뜨리고 진 왕조를 개창한 이후 420년 유유(劉裕)가 동진을 대신해 송(宋)을 개국한 시기까지를 대상으로 한다.

이 기간에 서진 왕조는 왕위 쟁탈전과 이민족 침입으로 불과 반세기만에 멸망하고 건강(建康.지금의 난징)으로 쫓겨난 그 일족이 동진을 세워 겨우 왕조 생명을 연장했다. 서진이 물러난 중국대륙 북방 지역은 이른바 5호16국(五胡十六國)이 난립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따라서 자치통감은 이 시대 중국사를 진 왕조를 정통으로 간주하면서 역사를 서술하긴 했으나, 실제는 5호16국사를 겸한다. 자치통감 출현 이전 이 시대 역사를 전문으로 취급한 정사로는 당 태종 이세민 시대에 편찬된 진서(晉書) 130권이 있으며, 자치통감 또한 이런 진서를 근간으로 삼아 진대사를 엮었다.

이 과정에서 자치통감은 진서 130권을 40권으로 줄였다. 자치통감이 놀라운 점은 원전에 비해 절대 분량을 줄이긴 했으나, 그 '콘텐츠'는 거의 훼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진서와 같은 기전체(紀傳體) 사서는 같은 내용이 같은 책 여러 군데서 중복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니지만, 사마광은 이를 전부 해체해 편년체로 역사를 재구성했다.

이번 자치통감 진대 편 완역은 국내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선보인 진대 통사와 5호16국시대 '원전사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자못 크다. 그동안 이 시대 역사상은 이들 원전을 재활용한 현대 역사학자들의 단행본이나 논문을 통해서만 맛볼 수 있을 뿐이었다.
taeshik@yna.co.kr
(끝)

자치통감



그에 즈음해 나는 권 교수를 인터뷰했다.


2007.08.20 07:15:03
<인터뷰> 자치통감 완역 권중달 교수
"2009년 32권으로 마무리..원고지 10만장 분량"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장마보다 더 지루한 '우기'가 끝나고 30도가 넘는 폭염이 기승을 부린 17일 오후 3시, 서울 관악구 봉천동 서울대입구역 근처 세종오피스텔 702호실 초인종을 눌렀더니 권중달(權重達.66) 중앙대 명예교수가 문을 열었다. 머리는 온통 백발이지만 환히 웃는 얼굴은 나이보단 젊게 보이게 한다.

반바지 차림으로 기자를 맞은 그는 작은 냉장고를 열어 주스 한 잔을 따라주면서 말했다.

"이게 오디라는 걸로 만든 건데 김 기자는 오디를 압니까?"

"압니다. 어릴 때 저희 집에서 누에를 쳤습니다. 오딘 질리도록 먹었습니다."

"아! 그래요? 요즘은 오디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조조 군대가 강남으로 출정했다가 (식량이 다 떨어져) 이 오디로 식량을 삼아 연명했습니다. 자치통감(資治通鑒)에 나오지요, 조조 군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자치통감으로 옮겨갔다. 그가 평생을 투자해 이제 탐스런 결실을 보기 시작한 자치통감을 주제로 만나기로 했으니, 기자에게 일부러 오디 주스를 꺼냈는지도 모르겠다.

퇴임 이후를 대비해 퇴임 1년 전에 매입했다는 10평 남짓한 이 오피스텔 연구실 서가 한 켠에는 전통시대 중국인 초상화 1점과 중국 황제가 관리 임명장에 서명한 문서인 '제가'(制可) 문서가 나란히 걸려 있다.

"저 초상화 주인공이 (북송) 황제 신종(神宗)이며 그 옆 문서는 신종 황제가 사마광을 재상으로 임명하는 것을 재가했다는 내용입니다."
신종 재위시대에 사마광은 자치통감을 완성해 황제에게 올렸다.

신종 초상화 맞은편 서가에는 일본에서 자치통감 일본어 완역사업을 시작한다는 사실을 공고한 인터넷 공지사항 프린트물이 걸려있다.

"작년에 웹서핑하다가 발견한 건데, 학력 불문하고 누구나 자치통감 번역에 참여할 수 있다고 공고하고 있습니다. 뭐, 이런 얘긴 좀 그렇지만, 일본에서도 이뤄내지 못한 일(자치통감 완역)을 제가 먼저 착수하고 상당한 성과를 냈다는 게 솔직히 뿌듯합니다."

자치통감이란 북송시대를 대표하는 정치가이자 사상가이며 역사가인 사마광(司馬光.1019-1086)이 전국(戰國) 시대에 속하는 주(周) 위열왕(威烈王) 23년(기원전 403) 이후 당나라가 지리멸렬하고 송나라가 서기 직전인 오대(五代)까지 1천362년간의 역사를 편년체(編年體)로 기록한 전체 294권에 이르는 장대한 중국 통사.

중국인도 그 완독에는 3년이란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권 교수는 말했다.

석ㆍ박사 학위 논문 주제였고, 40년 이상 연구생활에서 한 순간도 놓은 적이 없는 자치통감을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번역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회갑을 목전에 둔 1999년 무렵. 나름의 계산도 있었다. 2006년 정년퇴임 때까지 박차를 가한다면 완역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2007년 현재까지 무려 20년 가량이나 제자들과 함께 운영하는 자치통감 윤독회가 든든한 밑바탕이 된다고 판단했다.

"중간에 중단된 적도 있지만, 지금도 매주 수요일 오후 6-8시에는 윤독회를 합니다. 요즘은 평균 6-7명이 이 오피스텔에서 모입니다. 전공, 학력 등은 묻지 않습니다. 자치통감에 관심있는 분이면 누구나 환영합니다."

어떻든 권 교수는 자치통감 완역이란 큰 포부 아래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로 하고 2000년 3월에 마침내 그 첫 성과를 냈다. 하지만 기대보다 속도는 느렸다. 나아가 열정 하나로만 가능하리라 생각했으나 의외로 많은 복병이 나타났다.

이 문제는 자치통감 번역이 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사업으로 선정되자 어느 정도 숨통이 트였다. 이를 발판으로 2002년 8월에는 전한(前漢) 시대 편 3권을 추가로 발간했다.

그러나 재점화한 엔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해 두해가 흘러 권 교수는 정년퇴임을 맞게 됐다. 물론 이 기간에 사업은 중단되지 않았다. 결과물로 출판이 되지 않았을 뿐이지, 퇴직할 무렵에는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자치통감 초벌번역이 끝났다.

애초에 생각한 퇴임 이전 완역은 성사되지 않았으나, 준비가 착실했기에 퇴임 이후 작업은 가속도를 냈다. 그리하여 올 1월에는 후한시대와 삼국시대 편을 전 4권으로 완간한 데 이어 7월에는 진대(晉代) 편 4권을 추가했다.

"완역본은 2009년에 전 31권으로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마지막 32권은 해설본으로 기획하고 있습니다. 번역 원고가 완성됐고, 또, 그것을 두 번씩이나 교정을 보았으니, 이젠 출간 일정을 확실하게 할 수 있습니다. 2009년이면 반드시 완역본이 완성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또 하나의 큰 난관을 만났다. 출판이 문제였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해서 출판사들이 난색을 표하는 바람에, 권 교수는 아예 '삼화'라는 이름의 출판사를 등록했다.

"출판사는 제 집사람 이름으로 했습니다. 그렇다고 저나 집사람이나 출판에 대해 아는 게 있나요? 중앙대 사학과 출신으로 출판 경험이 있는 조성일씨가 막대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원고 분량에 대해 조씨는 "권당 본문만 따지면 200자 원고지 1천800장 가량인데 권당 2천 개에 이르는 각주까지 합친다면 3천장 안팎이 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책이 31권이니 번역본 총분량은 10만장을 헤아리는 셈이다.

역사편찬 전통에서 편년체를 연 자치통감은 역사에 명멸한 인물들의 이상과 성공, 음모와 야망, 좌절과 패배를 한데 몰아 넣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중국 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서도 필독서가 됐다.

하지만 분량이 방대한 까닭에 중국이나 대만 역사연구자 중에서도 이를 완독한 사람은 드문 실정이라고 권 교수는 말했다.

"내가 70년대 대만에 유학할 때 선생님 중 한 분이 한국에도 유명한 굴만리(屈萬里) 교수셨지요. 그 분이 사석에서 그러시더군요. '중국인으로 중국사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 중에 과연 몇 사람이 자치통감을 읽어봤는지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중국인 중국사 연구자가 이 모양인데 우리 역사학계는 어떻겠습니까?"

자치통감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권 교수는 중국사를 새롭게 보게 됐다고 말한다.

"중국사 연구자들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춘추전국시대나 5호16국시대를 '분열기'로 간주합니다. 하지만 과연 분열기인가? 저는 외려 이런 시대가 중국 내의 국제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중국 땅덩어리가 오죽 큽니까? 기후와 지리, 풍토가 다른 저 넓은 곳을 하나의 국가, 하나의 법률을 강요하다니요? 이런 말 하면 중국사람들 굉장히 싫어할 테지만, 중국은 분열되어야 해요."

중국측이 추진하는 이른바 동북공정과 그에 격렬히 반발하는 한국사회에 대해서도 한마디를 붙였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그에 반발해 한국사를 지키자고 우리가 나선다는 것도 결국은 자신감 부재에서 나온 현상입니다."
taeshik@yna.co.kr
(끝)

자치통감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한 번역 사업은 2008년 7월에는 남북조시대 편을 완성한다.


2008.07.01 16:37:51
<자치통감 남북조시대편 번역 완료>
陳ㆍ梁나라 편 이어 수나라 편도 발간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중앙대 권중달(權重達.67) 명예교수가 필생의 역작으로 추진 중인 자치통감(資治通鑑) 완역작업이 어느새 반환점을 돌았다.

해설집을 포함해 내년 연말 전 32권으로 자치통감 완역사업을 마무리 지을 예정인 권 교수는 최근 남조(南朝)시대 마지막을 장식하는 두 왕조인 양(梁)과 진(陳)나라 역사를 중심으로 남북조시대 중국사를 정리한 부분인 양기(梁紀. 완역본 기준 제16-17권)와 진기(陳紀. 18권)와 함께 오랜 분열시대에 막을 내리고 통일 중국시대의 문을 연 수(隋)나라(581-618) 통사인 수기(隋紀.19권) 편을 내놓았다.

따라서 그가 계획한 자치통감 완역작업은 이로써 대략 3분의 2 가까이 마무리한 셈이 됐으며 앞으로 그의 작업은 개별 왕조별 기술 분량에서 분량이 가장 많은 데다, 역사학계에서도 그 가치를 매우 높게 치는 당나라 역사인 당기(唐紀) 번역에 주력하게 됐다.

이번에 완역이 이뤄진 진ㆍ양ㆍ수나라 시대를 다룬 정사(正史)로는 진서(陳書)와 양서(梁書), 그리고 수서(隋書)가 있고, 나아가 남북조시대 통사로 각각 편찬된 남사(南史)와 북사(北史)가 있기는 하지만, 북송시대 정계와 문단의 거물인 사마광(司馬光.1019-1086)은 기전체인 기존 사서를 중심으로 다른 기록들을 참조해 편년체로 재편집한 자치통감을 완성했다.

그런 점에서 양기(梁紀)와 진기(陳紀), 그리고 수기(隋紀)는 그 자체가 각각 이들 세 왕조의 정사로 평가되기도 한다.

나아가 중국 대륙에서 이들 왕조가 활동한 시기는 한반도에서는 신라, 고구려, 백제의 3국이 치열하게 쟁패한 시기이면서, 그 주도권을 서로 쥐기 위해 중국 왕조와 활발하게 교통하던 시대로서 이에 관련되는 기술이 자치통감에서도 자주 보인다.

특히 수 왕조는 익히 알려져 있듯이 그것이 패망에 이르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고구려 정벌의 실패라는 점에서 수기에는 고구려와 관련되는 기술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자치통감 완역본은 이 사업을 위해 권 교수 자신이 직접 차린 도서출판 삼화를 통해 출판이 이뤄지고 있다.

각권 650쪽 안팎, 권당 2만8천원.
taeshik@yna.co.kr
(끝)


저에 즈음해 남북조시대 편에 드러난 문화양상을 나는 따로 정리하기도 했다.


2008.01.07 18:02:51
<기행이 판친 중국 남북조시대>
권중달 교수 자치통감 宋-齊 편 완역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선비족 탁발부(拓跋部)가 세운 북위(北魏)가 황하 이북에서 맹위를 떨칠 무렵, 그 황제 현조(顯祖) 탁발홍(拓跋弘)은 18살 성인이 되어 직접 통치를 실시하기 시작한 직후(471년) 갑자기 신하들을 불러놓고 황제 자리를 양위하겠다고 발표한다.

그가 생각한 다음 황제는 숙부이자 중도대관(中都大官)이란 벼슬에 있던 경조왕(京兆王) 탁발자추(拓跋子推). 이는 북위 조정을 일대 혼란에 빠드린다. 황제가 회복할 수 없는 중병을 앓고 있는 것도 아니요 사지가 멀쩡한 데다, 더구나 나이는 비록 5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의 아들이자 차기 황제 자리를 이를 황태자 탁발굉(拓跋宏)이 엄연히 있었기 때문이다.

현조의 두 가지 의지 중 하나는 좌절됐다. 황제 자리에서는 물러나되, 다음 황제는 숙부가 아니라 황태자여야 한다고 벌떼처럼 들고 일어난 신하들에게 밀려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는 태상황제가 되어 정치 일선에서 퇴진한 것이다.

한창 나이인 현조 탁발홍이 이렇게 결심한 까닭은 불교를 지나치게 신봉했기 때문이었다.

사마광은 자치통감에서 "현조는 총명하고 예지가 있으며 조숙했고 강직했으며 굳세고 결단성이 있었으나 황노(黃老.황제와 노자, 곧 도교)와 부도(浮圖.불교)의 학문을 좋아해 조정 신하들과 사문(沙門.불교승려)을 불러 함께 현묘한 이치를 이야기할 때마다 부귀를 가볍게 여기면서 항상 세상을 등질 마음을 품고 있었다"고 기록했다.

현조가 물러난 때와 똑같은 해, 양쯔강 유역 강남에 자리잡은 남조 송(宋) 황제인 명제(明帝) 유욱(劉彧) 또한 비슷한 증상을 보였다. 그 또한 불교를 지나치게 신봉해, 즉위 전 자기가 살던 집을 상궁사(湘宮寺)라는 사찰로 만들어 극도로 사치스럽게 꾸미는가 하면, 그곳에다 10층짜리 부도(이 경우는 탑)를 지으려다 그것이 여의치 않자 나누어 2개의 탑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유욱은 매일 바둑에 미쳐 살다시피 했다.
유욱보다 앞서 재위한 송나라 4대 황제 효무제(孝武帝) 유준(劉駿)은 네로 황제도 부끄럽게 할 만한 문란한 행동을 일삼다 결국은 신하들에게 폐위되어 무참히 살해됐다.

그는 어엿한 남편이 있는 유부녀이면서, 자기에게는 고모인 신채(新蔡) 장공주(長公主)를 후궁으로 받아들였는가 하면, 임신 중인 신하의 첩을 궁중으로 불러들인 것으로도 모자라, 어느 날에는 조정에다 자기의 비(妃)와 공주들을 불러내 한 줄로 세워 놓고는 주변에 있던 남자들에게 강제로 욕을 보이도록 하는 기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흔히 혼란의 시대, 격동의 시대라고 일컫는 중국 남북조시대의 실상을 여실히 엿볼 수 있는 원전이 비로소 국내에 선보였다.

번역본 기준 전 31책에 이르는 자치통감 완역의 대장정에 나선 중앙대 권중달 명예교수가 그 일환으로 남조 송(宋.420-479)과 이를 이은 제(齊) 왕조(479-502)의 81년간에 걸친 완역본 3책(삼화)을 최근에 내놓았다.

완역본 기준 제13-15책이며, 자치통감 원문으로 보면 권119에서 권144까지 총 26권 분량이다.

주요 사건을 연대 순서를 따라 기술하는 편년체인 자치통감은 송-제-양-진으로 계승된 남조를 정통으로 삼긴 했으나, 이 기간에 해당하는 북위(北魏)를 비롯한 북방 여러 왕조에 대한 기록 또한 시간 순서에 따라 배치했다.

권 교수는 "중국사에서 위진남북조시대는 각 왕조가 난립한 것처럼 보이는 까닭에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는 듯하지만, 실제 각 왕조가 차지한 영역은 전국시대 7국의 연장임을 알 수 있다"면서 "이는 중국의 지리적, 문화적 차이가 만들어낸 자연스런 경계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이 시대 황제들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각종 기행 또한 "단순히 어떤 제왕의 무도나 불륜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정신이 초탈과 방달(放達)로 대표되는 현학(玄學)이 유행한 데 따른 규범 파괴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각권 2만8천원.

taeshik@yna.co.kr
(끝)

권중달 선생



이어 번역은 마침내 당대唐代에 도달했으니 그 소식이다.


2009.10.29 15:53:28
자치통감 당나라 역사편 완역
권중달 교수 '唐紀' 8권으로 완성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건국(618년)에서 멸망(907년)까지 290년에 이르는 당나라 역사를 정리한 '당기'(唐紀)는 거질 역사서 자치통감(資治通鑑)의 한 편이지만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와 구별되는 제3의 당서(唐書)로 꼽힌다.

사건을 연대순으로 정리한 편년체인 자치통감의 '당기'는 상대적으로 더욱 방대한 기전체 역사서들인 신ㆍ구당서에 비해 분량은 짧지만, 두 당서를 응축했으며 새로운 내용도 많다는 평가가 있다.

북송시대 사마광(司馬光.1019-1086)이 필생의 대작으로 완성한 자치통감 완역에 도전하고 있는 권중달 중앙대 사학과 명예교수가 최근 '당기'를 전 8권으로 완간했다.

해설편 1권을 포함해 전 32권으로 펴낼 예정인 완역본 시리즈 전체에서 '당기'는 제20~27권을 차지한다.

따라서 지난 1997년에 시작한 자치통감 완역은 앞으로 오대십국(五代十國)시대 편 4권만 보충하면 내년 상반기 중으로는 완성을 보게 된다.

사마광이 자치통감을 완성하는 데 20년 걸렸으니, 그 절반 남짓한 시간을 투자해 완역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 보충된 당기 3권(번역본 기준 제25~27권)은 안녹산과 사사명의 난(755년)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한 당이라는 거함이 최종 침몰(907년)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 기간에 당 왕조는 무너진 조용조 세법을 대신해 양세법을 실시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으며, 그에 따라 하북 지역과 장안에서는 반란이 잇따르다가 헌종시대에 이르러서는 붕당까지 출현하는 위기를 맞는다.

헌종은 지방 번진 세력을 억누르려 했지만 환관들에게 시해되고 이후에는 환관들이 권력을 쥐락펴락하는 시대로 접어든다.
최치원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계기가 된 황소의 난은 이런 당 왕조에는 회복할 수 없는 결정적 타격이었다.

이 와중에 등장한 절도사 주전충은 황제 소종을 협박해 장안을 떠나 낙양으로 천도하게 했다가 죽이고는 애제를 세웠다가 907년에는 마침내 황제 자리를 찬탈하고 후량(後梁)을 건국함으로써 당은 역사에서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권중달 교수는 "동아시아 역사를 중국 중심으로 본다면 이 시대는 분열의 시대이고 혼란의 시대지만, 한족(漢族)만이 동아시아의 주인은 아니므로 이 지역 전체로 보면 이 시대는 동아시아의 가장 정상적인 시대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도서출판 삼화. 각권 600쪽 안팎. 권당 2만8천원.
taeshik@yna.co.kr
(끝)

애장본 자치통감 전질



나는 저 당기唐紀 중에서도 이세민 쿠데타를 어찌 기술하는지를 착목했다.


2009.02.02 16:21:25
<자치통감으로 보는 이세민의 쿠데타>
제3의 唐書 '唐紀' 완역 시작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당(唐)이 건국된 지 9년째인 고제(高帝) 무덕(武德) 9년(626년) 6월1일 대낮에 태백성이 출현한다.

당시 다음 보위를 이을 황태자는 38세의 장남 이건성(李建成.589-626)이었으며, 그의 동생 이세민(李世民.599-649)은 28세로 진왕(秦王)에 책봉돼 있었다. 이 외에도 넷째아들로 제왕(齊王)에 책봉된 24세의 이원길(李元吉.603-626) 또한 야심이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대낮에 보이면 정권이 바뀐다는 징조로 해석된 태백성이 나타날 무렵, 이세민이 이끄는 진왕부(秦王府)에서는 거대한 쿠데타 음모가 착착 진행 중이었다.

이 쿠데타 원인을 현재 남은 거의 모든 기록은 이건성과 이원길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이세민을 두 형제가 사사건건 견제하며 죽이고자 했으므로, 이세민이 할 수 없이 먼저 칼을 빼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발발한 사건이 그 유명한 '현무문의 변'(玄武門之變)이다.

이를 통해 이세민은 당시 당나라 서울 궁성인 장안성 현무문에서 친형제들을 무참히 참살하고, 아버지까지 몰아내고는 황제 자리를 꿰차게 되니, 중국사를 대표하는 성군(聖君)으로 칭송되는 당 태종이 바로 그다.

북송시대 사마광(司馬光.1019-1086) 또한 그 필생의 대작 '자치통감'에서 현무문의 변이 이건성-이원길에 원인이 있다고 하면서, 이세민 자신은 쿠데타에 반대했지만 부하들에게 떠밀리다시피 해서 할 수 없이 일으킨 사건처럼 기술한다.
자치통감은 쿠데타 주역으로 방현령(房玄齡)과 장손무기(長孫無忌), 두여회(杜如晦), 그리고 울지경덕(尉遲敬德) 등을 든다. 당 태종이 성군으로 추앙되듯 이들 또한 중국사를 대표하는 명재상으로 꼽힌다.

이세민과 참모진은 거사 일자를 6월 4일로 결정한다.

각본에 따라 이세민은 이건성과 이원길을 현무문에서 제거하고자, 거사 전날 아버지 이연(李淵)에게 두 형제가 "후궁들과 음란한 짓을 일삼았다"는 상주문을 올렸다고 자치통감은 말한다.

이에 격노한 이연이 다음날 아침 일찍 이건성-이원길을 국문하기 위해 현무문을 통해 궁으로 불러 들이니, 이세민은 "장손무기 등을 인솔하고 들어가 현무문에 몰래 군사를 숨겨 놓았다"가 먼저 이건성은 직접 활로 쏘아 죽이고, 그 동생인 이원길은 바깥에서 대기 중이던 울지경덕이 처치한다.

대살육이 자행되던 당시 황제 이연은 "해지(海池.궁궐 안 연못)에서 배를 타고 있었다"고 자치통감은 기술한다.

하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기술이다. 황태자와 다른 친아들을 국문하고자 불러들인 그 순간에 황제가 한가롭게 뱃놀이나 했다는 것은 모순 투성이기 때문이다.

더욱 이상한 점은 이런 뱃놀이를 하다가 상황을 보고 받은 이연이 취한 행동이다.

자치통감에 따르면 이세민의 부하들이 "지금 진왕(秦王.이세민)이 이미 (역적들을) 토벌하여 죽였으니 진왕의 공로는 우주를 덮으며, 전국의 인민들의 마음이 (그에게로) 쏠리고 있으니 폐하께서는 (진왕을) 태자로 두시고 나라 일을 맡기시면 다른 일은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이연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훌륭한 말이다. 이는 내가 옛날부터 갖고 있던 마음이다."

이런 일이 있은 지 불과 3일 뒤인 6월 7일, 이연은 이세민을 황태자로 책봉하고, 그 해 8월 9일에는 마침내 동궁(東宮)의 현덕전(顯德殿)이란 곳에서 황제 자리에 올랐다고 한다.

이연이 자발적으로 이세민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준 것처럼 기술했지만, 이세민 부하들의 어투는 누가 봐도 물러나야 한다는 협박이며, 황태자를 비롯한 친아들 둘이 비참하게 죽었다는데 이렇다 할 만한 반응을 보이기는커녕 그것을 반겼다는 기술도 조작임이 분명하다.

집권 과정이 불법이었기 때문인지, 각종 다른 기록을 참작할 때 이세민은 유난히 자신에 대한 역사기록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아가 그 자신이 성군임을 치장하려는 제스처도 다른 역대 중국 황제들에 견주어 유별나게 많다.

역사는 이긴 자의 기록이라는 금언이 제격인 곳이 바로 이 현무문의 변이다.

이를 포함해 수나라가 멸망하고 이연을 비롯한 군웅들이 역사의 주인이 되기 위해 펼친 장편 대하 드라마가 펼쳐지는 자치통감의 당나라 초기 역사가 마침내 완역에 들어갔다.

올 연말 자치통감을 전 32권으로 완간할 예정인 권중달 중앙대 명예교수가 이미 다른 출판사(푸른역사)에서 출간한 적이 있는 전한시대(전 3권) 편을 포함해 당나라 역사서인 '당기'(唐紀) 완역에 들어가 그 첫 성과물로 당나라 편 제1권을 선보인 것이다.

자치통감 완역 계획에서 당나라 편은 전 8권으로 예정돼 있다.

자치통감 '당기'는 당대사의 양대 사서로 꼽히는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와는 계통이 다른 사료를 이용한 까닭에 '제3의 당서(唐書)로 평가된다.

도서출판 삼화. 각권 600쪽 안팎. 권당 2만8천원.

taeshik@yna.co.kr
(끝)

애장본 자치통감 전질



이렇게 해서 마침내 대장정은 2010년 6월에 완성을 보게 된다.


2010.06.08 18:47:50
"빨리 안내면 촛불시위 들어갑니다"
권중달 교수 40년의 집념..자치통감 완역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우리 출판계 풍토를 보면 연작인 책이 출판사를 바꾸기 시작하면 대체로 그 출판물은 결실을 보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나고 만다. 특히 그 대상이 고전 역주물이면 더욱 그렇다.

전공이 중국사라기보다는 차라리 '자치통감'(資治通鑑)이라고 해야 할 권중달 중앙대 사학과 명예교수가 40년 '자치통감학'의 집념을 쏟아부은 역작 자치통감 완역 작업도 하마터면 이럴 뻔했다.

60년대 말 석사학위 논문 주제로 다루면서 자치통감과 질긴 인연을 쌓기 시작한 권 교수가 직접 그 번역 작업에 돌입한 것은 1997년.
그 첫 성과물은 2000년 3월에 나왔다.

춘추시대 강국이었던 진(晉)나라가 위(魏)ㆍ한(韓)ㆍ조(趙)의 세 나라로 분열돼 전국시대가 전개된 기원전 403년, 이후 이런 분열기를 통합한 진(秦) 제국이 마침내 멸망하고 한(漢)나라가 건국한 기원전 207년까지를 다룬 완역본 첫 권이 마침내 나온 것.

당시 이 역주본은 '서리가 밟히면 물 어는 시절이 오리니'라는 제목으로 세화라는 출판사에서 선보였다. 세화 출판사는 이 출판물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권 교수 자신이 차린 출판사였지만 이내 문을 닫고 말았다.

자치통감 번역의 다음 성과물은 2002년 9월에 나왔다. 전체 3권으로 분책한 전한(前漢) 편이 그것으로 이번에는 출판사가 푸른역사였다.

하지만 권 교수는 다시금 출판사를 바꿔야 했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것을 우려한 출판사들이 출판을 꺼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단비'도 있었다. 한국학술진흥재단(지금의 한국연구재단)에서 자치통감 번역 사업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지원이 이내 부담이 되어 돌아왔다. 그 지원 내역에는 출판비가 없었다.

재단에서 지원을 받았으면 그것을 반드시 출판물로 내야 할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전체 30여 책에 달할 자치통감 번역의 출판을 맡겠다고 선뜻 나서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삼화'라는 출판사를 등록하고 이곳을 통해 자치통감 번역을 출판하기 시작했다. 대략 6개월 단위로 5권 안팎씩 출간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산적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집념 하나로 막상 시작했지만 자금 회전에 실패한 것이다. 기존에 출간한 자치통감이 어느 정도 판로를 개척하면 이를 토대로 다음 번역물을 출간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출판시장을 얼어붙었고 더구나 한문고전을 찾는 독자는 거의 없었다.

사면초가에 다다른 권 교수는 부인 정철재 씨와 상의했다. 퇴직금을 털어야겠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이때 일을 회상하면서 권 교수는 "아내가 다행히 내 뜻을 따라 줘서 자치통감 완역이라고 하는, 내게는 꿈만 같은 일을 해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퇴직금은 자치통감 출판비용에 충당했다. 이것으로도 자금 압박에 시달리자 권 교수는 딸 희선씨까지 출판사에 투입했다.

전 31권에 이르는 전인미답의 자치통감 완역물을 출간한 '삼화' 출판사가 '발행인 정철재', '기획 권희선'이 된 사연은 단순히 가족 출판사를 차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중화 문화권 이외에서는 최초의 자치통감을 완역한 권 교수는 그에 이르는 온갖 고초 속에서도 눈물겨운 경험을 여러 번 했다.

그가 꼽는 가장 감동적인 장면 하나.

"자치통감 20권째를 다 읽고 나니 그다음이 기다려져 일이 손에 안 잡힙니다. 언제 6월까지 기다리나요? 그때까지 기다리다가는 목 디스크가 발생해 병원에 입원해야 할 터…당장에 삼화 출판사 정문 앞에 텐트치고 '자치통감 하루빨리 출간해 주십사' 현수막 내걸고 촛불 시위라도 들어가야 할 듯."

이는 권 교수가 자치통감 완역 작업을 벌이면서 개설한 '독자와 함께 하는 통감닷컴'에 지난해 4월30일자로 오른 김충언이라는 사람의 글이다.

대작을 마무리한 8일, 권 교수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괜한 객기를 부린 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 때마다 이런 격려의 글을 보면서 더욱 분발했습니다. 내 번역이 100% 정확할 수는 없겠지만 40년 동안 품은 꿈을 마침내 실현했다는 것만으로도 내 가슴은 벅차기만 합니다."

taeshik@yna.co.kr
(끝)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