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귀걸이·은허리띠 한 신라 무덤 주인은…"키 165cm 이상 남성"
김예나 / 2022-12-07 09:55:24
8일 경주 황남동 120호분 발굴 현장 설명회…"신라 문화 이해 위한 학술 가치 커"
https://k-odyssey.com/news/newsview.php?ncode=179542971613927
저 무덤 발굴소식은 두어 번 전했거니와, 발굴조사기관은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이라는 데고, 아무래도 출토유물도 많고 발굴성과도 우락부락해서 국가기관 신세를 지지 아니할 수 없어 문화재청이 나섰다는 사실을 지적해야겠다. 나 역시 괜히 저 소식 접하고는 경주연구소로 전갈을 넣었다가 "그건 우리끼 아인데요" 하는 쿠사리만 먹었다. 왕경단이다.
저 보도를 보면 보통 발굴현장과는 무척이나 다른 열라 좋은 도판이 잔뜩 첨부됐음을 보게 되거니와, 보나마나 저건 오세윤 작가가 정식으로 고용되어 찍은 것들이다. 특히 기록성이 높은 발굴현장은 전업 전문작가를 불러다가 촬영해야 하며, 그런 점에서 이 현장은 그 보기를 준다.
우선 이번 발굴현장이 어케 생겨먹었느냐를 봐야 하는데, 앞에 첨부한 사진과 그에 붙인 설명 한 장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방향타를 보면 우리가 익숙한 그 동서남북 맞을 것이다.
120호분이라고 이름한 주인공 무덤이 가운데 떡하니 버팅기고 그 북쪽 지점에 이 무덤과 아주 나란히 달리기는 하는 아주 작은 무덤이 하나 있어 이를 120-1호분이라 이름했으며, 그 아래쪽에 120-2호분이 자리함을 본다.
하늘색 타원형 둥근 선은 120호분 호석렬護石列이 지나는 지점이다. 달걀 모양이다. 저 타원형이 혹 경주 신라무덤 가서 봤을지 모르나 봉분 아래쪽 테두리를 빙둘러가며 흙이 휩쓸려 내리지 말라 해서 구축한 돌담이다.
두 딸린 무덤은 조사 현황이 어떤지 모르겠다. 저 사진 양상으로 보면 아예 조사가 완료된 것도 같고, 그것이 아니라면 이제 조사 시작일 것이다.
120호분 가운데 직사각형을 매장주체부라 한다. 간단히 말해 저기가 관뚜껑 있는 자리다. 한데 그 장축 방향을 보면 대략 동서축이다. 적석목곽분은 거개 이렇다. 동서방향으로 장축을 두고 머리는 동쪽으로 둔다.
한데 저 매장주체부를 보면 크게 두 지점으로 나뉨을 본다. 저걸 오른쪽으로 회전하면 T 모양이다. 저 T 모양 중에서도 직사각형 길쭉이 l 지점이 시체가 묻힌 곳이며, 정사각형 ㅁ 모양 ㅡ 에 해당하는 지점이 부곽 혹은 부장곽이라 해서 껴묻거리를 묻어둔다.
신라가야문화권 무덤을 보면 저처럼 T 자형으로 주곽과 부곽을 배치하기도 하고, 어떤 데서는 또 아예 ㅣㅣ 모양으로 나란히 배치하기도 한다. 물론 시체 묻는 공간이 상대적으로 넓고 크며, 부곽은 작다.
이제 발굴조사단에서도 저 방식이 유행하기 시작한다. 저 방식을 내가 시작한 건 아니지만, 저걸 광범위하게 유통한 혁명은 김태식이다. 사람을 저리 그려 뉘여 놓아야 이해가 쉽지 않은가?
자 각설하고 120호분 중심을 차지한 시체가 저렇다. 저 배치 양상을 밝혀내는 방법은 실로 간단하다. 귀걸이를 비롯한 악세사리라든가 신발 같은 위치, 칼이 놓인 지점(특히 그 방향) 등등을 고려하면 두살배기 얼라도 안다.
하늘색 선이 관 뚜껑이겠고, 그 밖으로 2중으로 겹시설을 했음을 본다. 이를 뭐 고고학도들이 관곽棺槨 뭐 이딴 말들을 동원해 잡다스레 설명하기도 하나, 간단하다. 선물 포장할 때 한 겹을 쌓을 수도 있고 두 겹 쌓을 수도 있다. 그거랑 똑같다. 하등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없다. 암튼 저렇댄다.
바로 요거다. 요런 위치에서 요런 유물들이 출토했으니 시체 위치를 저리 추정한 것이다. 인골도 나왔으니 말 다했지 뭔가?
저 양반이 착장한 각종 유물 세부 그림들이다. 저 상태로 생전에 돌아다녔다면? 귀 떨어지고 발 나가고 목디스크 허리디스크 피할 수 없다. 왜 저리 잔뜩인가?
시체기 때문이지 뭐가 있겠는가? 이제 유물 세부로 하나씩 보자.
저기서 주목할 유물이 다리미!!! 이건 내가 누누이 강조했다. 남자가 왜 다리미?
남자가 다리미 델꼬 나오는 모습은 패턴이 있다. 대개 머리맡이다. 이것도 머리맡!!!
뭐냐? 칠성판이라 했자나? 기자가 한 말이라서 신뢰가 안 가니?
무덤 세분 양상들이다.
암튼 저런 유물 출토 양상 등등을 고려해 이 무덤 주인공은 남자!!! 그리고 신장은 165센티 정도였음을 밝혀냈다고 한다.
아래는 보도자료 전문이다.
경주 황남동 120호분 발굴현장 공개설명회(12.8) 개최
- 5세기 후반 조성… 금제 귀걸이․은제 허리띠 착용한 신장 165cm 이상의 남성 묘 -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경상북도(도지사 이철우), 경주시(시장 주낙영)와 함께 오는 8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 두 차례에 걸쳐 경주 황남동 120호분 발굴조사 성과를 일반에 공개하는 현장설명회를 개최한다.
※ 발굴조사기관 : 신라문화유산연구원
120호분은 3개의 봉분이 포개어진 고분으로, 지난 2018년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발굴조사에 착수하여 120호분의 주변부인 120-1호, 120-2호분 조사는 2021년에 완료한 바 있다. 특히, 120-2호분에서 금동관, 금동관모, 금제 태환이식, 유리구슬 가슴걸이, 은제허리띠, 은제팔찌, 은제반지, 금동신발 등 화려한 장신구를 착장한 여성으로 추정되는 피장자가 발굴된 터라 중심분인 120호분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이 컸었다.
이번 현장설명회는 중심부인 120호분의 시신이나 관을 비롯하여 부장품을 직접 보호하는 시설인 매장주체부의 발굴성과를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이다.
※ 피장자: 무덤에 매장되어 있는 사람
120호분은 봉분지름 28m의 돌무지덧널무덤으로 시신을 안치하는 주곽과 부장품을 넣는 부곽으로 이루어진 구조이다. 길이 380cm, 너비 165cm인 주곽에는 주검 칸과 부장 칸이 있는데, 주검 칸에는 주인공을 동쪽으로 향하게 하여 넣었고, 주인공 동측에 있는 부장 칸에는 청동다리미 및 각종 토기 등을 같이 묻었다.
주검 칸에는 목관 바닥에 납작한 철 덩이쇠를 깔고 주인공을 안치하였으며, 가장자리에는 석단을 놓았다. 석단 하부에 목질 흔적이 남아 있어 주곽은 목곽임을 알 수 있었다.
※ 돌무지덧널무덤: 땅 위 또는 땅에 구덩이를 파고 나무 덧널을 넣은 뒤, 그 위를 돌로 덮고 다시 흙을 씌워 만든 무덤
※ 부곽: 주곽에 딸려 대게 부장품을 넣어 두는 곳
※ 철 덩이쇠: 얇고 긴 형태의 판형의 철물로 권력과 부의 상징
무덤주인공은 목과 가슴 부근에 금제 가는귀걸이, 유리구슬 가슴걸이, 허리 부분과 그 주변에 은제허리띠, 철제대도 등을 착장하였다. 다리 부근에 정강이뼈로 추정되는 인골 흔적이 남아 있어 무덤주인공은 신장 165cm 이상의 남성으로 추정된다. 한편 머리에서 벗어난 위치에서 은제투조관식과 금동투조관모가 뒤집어진 채 확인되었는데 이는 주인공 머리에 관(冠)을 착장하지 않고 부장 칸 상부에 같이 묻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외에도 금동제 말갖춤, 은장식 화살통, 운모, 각종 토기류 등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경주 황남동 120호분의 축조 시기는 이러한 출토유물로 미루어 보아 황남대총 북분과 천마총 사이인 금관총 단계이며, 5세기 후반 경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봉분에 산모래가 사용된 점, 은제투조관식 및 은제허리띠의 투조 문양은 그동안 신라에서 확인되지 않았던 양식인 점 등이 확인되면서 신라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학술적 가치가 아주 크다고 할 수 있다.
※ 투조 관식: 금속판의 일부를 톱 등으로 도려내고 남은 부분을 무늬로 표현한 관 장식
문화재청은 앞으로도 적극행정과 정부혁신의 하나로 주요 발굴현장을 공개하여 문화재가 국민에게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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