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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지옥 같은 나날들이 오늘에 준 선물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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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그런지 자신은 없으나 나를 빗대어 일반화 위험을 무릅쓰고 말한다면, 기자는 그 자리를 떠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다른 부서 혹은 같은 부서 안에서도 담당 업무가 바뀌면, 직후 얼마간 그 전에 맡은 분야에 눈길을 조금은 주다가 이내 쳐다도 안 본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한편으로는 참말로 불행한 사람이다. 한 분야에 너무 오랫동안 눌러앉은 바람에 그에서 이른바 전문성은 어느 정도 얻었을지는 몰라도, 그 희생비용이 선사할 다른 데를 쳐다볼 기회를 망실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지금 나는 한류 관련 부서에서 일을 한다. 내가 이쪽을 원치 않았다면 모를까 적어도 내가 그 인사를 거부하거나 반대한 것은 아니기에, 그 시작은 밍기적 하는 기분이었을지는 모르나, 그런대로 이쪽에 1년 넘게 있어 보니 투신할 만한 분야라는 생각도 들기에, 또 내가 그 부서장인 까닭도 있겠지만, 우야둥둥 어찌하면 이쪽 일을 잘해볼까 하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나는 장장 17년을 같은 문화부, 개중에서도 문화재랑 학술이라는 분야만 매몰한 까닭에 그에 너무 함몰해버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30년(정확히는 29년이다)에 달하는 기자생활 중 그것이 아닌 생활이 지금의 이 자리에서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는 말도 덧붙여 둬야겠다.

나는 부산지사를 거쳐 체육부, 그리고 사회부를 거쳐 문화부로 이동했다. 그 말미 해직이라는 우여곡절을 거쳐 그 말미에 몸담은 전국부에 잠깐 몸담았다가 부장이 되어 문화부로 복귀했으니, 부서로 보면 그래도 5개 부서를 거쳤으니 기자로서 이런저런 일은 대강 해 본 셈이다.

저 중에서 부산지사와 체육부는 정말 내가 가기 싫었던 곳이며,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나날이었다. 일하고 싶은 않은 데서 나날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임은 말할 나위가 없겠다.

사회부는 그냥 거쳐야 하는 관문으로 생각했으므로, 좋아한 데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이런저런 보람까지 찾은 데였다.

지금 관점에서 말한다면, 저들 생활이 지금의 일에 어느 정도, 아니 상당한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일 수도 있겠다 싶다. 예컨대 체육부만 해도, 나는 그 기자가 싫었지, 스포츠가 싫은 것은 아니었으니, 그때 어줍잖게 줏어들은 것들이 지금의 한류단 운영에 크나 큰 혜택을 준다.

그렇게 싫은 체육부를 마침내 탈출했기에 발령장을 받는 순간 체육부를 지워버리기는 했지만, 지금의 한류콘텐츠 그 막중한 비중을 차지하는 스포츠한류를 구성하는데 그때 경험이 적지 않은 밑거름이 된다. 그것이 아니었던들 내가 메이저리그를 알았겠으며, 유럽축구를 알았겠는가? 또 골프채도 딱 하루 지금까지 잡아본 놈이 pga며 lpga는 어찌 알았겠는가?


사회부에서 경찰기자, 그리고 그 와중에 법조라는 데도 언저리에서 잠깐 담갔었으니, 그런 대로 법률 용어라도 알아듣기는 한다.

물론 배운 게 도둑질이라, 문화재 비중이 큰 까닭은 이 도둑질과 연동하지만, 그 관점도 이제는 더 변해서 오직, 아니 대부분 한류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 근간이야 어찌 망각으로 완전히 던져버릴 수 있겠냐마는, 문화재 기자생활 관심 지닌 분야들에 나는 더는 문화재 관점에서는 관심이 없다.

지정체계? 관리체계? 발굴? 활용? 세계유산? 더는 관심없다.

오직 한류라는 관점에서 그것들을 다시 버무릴 뿐이다. 왜? 지금 내가 맡은 일이 그것이므로.

덧붙여 기왕 그 관점에서 하는 김에 다른 분야를 나 나름대로는 개척할 뿐이다. 가지 않은 길, 그것을 찾기도 하는데 혹 늦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으나, 이 연배에 내가 무엇을 바라서 하겠는가? 하고 싶어할 뿐이다.

그래도 신진 혹은 후배라 이름하는 젊은 친구들이 가는 길에 작은 디딤돌 하나 내가 놓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없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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