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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순수비의 신라척경지역은 토질지도=농업생산성이 있는 지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당시 농업기술로 용이한 경영이 가능한 가장 북쪽 지역까지 올라간것이 아닌가 싶고,
이 신라척경지역의 판도가 윤관 9성과도 관련이 있었다고 본다.
아마도 고려때까지도 돌파하지 못했던 동북쪽 경계가 두만강까지 올라가게 된 것은 여말선초 당시 농업기술의 발전과 관련이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필자의 전공이 아닌지라 확신할수는 없다.
자세한 것은 아래 그림의 설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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