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따로 쓸 일이 있겠지만 필자는 연구에 인문학적 색채를 가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동아시아사를 따로 공부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서 대학원에 적을 두고 공부를 하고 있다. 지금 중국사에 대한 석사논문을 하나 쓰고 있는데 아마 올해 상반기에 마무리 될 것 같다.
논문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사실 하나.
중국은 고환경에 대한 연구가 제법 있다. 특히 지난 수천년간의 기후변동에 대해서는 축적된 성과가 좀 있는데 우리역사의 해석에도 도움이 될 듯하다. 나중에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맛보기로 하나.
중국에서 갑골문이 만들어지던 시대에는 코뿔소나 물소 등 아열대 동물이 황하 유역에 살고 있었는데 기원전 1000년기 전반에 기후가 급변하면서 멸종한다. 구체적으로는 서주-춘추시대 사이의 사건이다. 이 시기가 평균기온이 2-3도 정도 내려가면서 아열대 동물이 황하유역에서 멸종한 시대다.
갑골문이 만들어지던 시대에는 전국시대보다 도작의 시기가 평균 1개월 정도 빨랐다는 이야기도 있다. 벼가 그만큼 잘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 시기에는 벼농사의 북방한계선이 매우 북쪽으로 이동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아마도 한반도로 벼가 들어온 시기가 이 시기가 아닐까 한다. 한반도로 벼농사가 도입되려면 황하를 건너야 하기 때문에 일단 최단거리로 도입되기 위해서는 중국대륙에서 벼농사가 한껏 북상해야 한다. 따라서 한반도로 벼농사가 들어왔던 시기는 지금보다 기온이 훨씬 온난한 시대로서 중국 상대商代 이전의 어느 시기인가 일 것이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음 단계는 급격한 평균기온의 하강이다. 중국 황하유역에 서주-춘추시대에 걸쳐 평균기온이 계속 하강하였으므로 한반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처음에 한반도 북부에 이식된 벼농사는 바로 이 시기가 되면 더 적당한 기후조건을 찾아 남하를 재촉했을것이다.
한반도에서 쌀농사의 주도권이 남쪽 지방으로 넘어 온 것은 아마 중국사의 서주-춘추시대 전후한 시기가 아니었을까? 대체로 중국 춘추전국시대 즈음에는 한반도 도작의 중심지는 한반도 남부로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다. 이 시기에 한반도 남부의 좁은 땅에서 도작의 정착으로 인구가 급증하게 되자 다음 단계의 이주를 준비하게 된다. 일본으로 도작과 함께 이주하는 것이다. 바로 야요이 시대의 시작이 되겠다.
중국의 기후사에 대한 보고는 한국사에 대해서도 여러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한다.
필자의 연구실 블로그: http://shinpaleopathology.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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