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소위 통설이라는 주장이
사료 연구로 간단히 뒤집히는 경우가 자주 보인다.
예를 들어 원래 이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렇더라, 이런 내역들인데
20세기 이후 지방 사족들 목소리가 워낙 높다 보니 조선시대를 바라보는 시각도 그에 편중되어
그 주장을 토대로 그 시대를 바라보는 경우가 많은 바,
정작 문헌 고찰을 상세히 하면 간단히 논파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예를 들어 이전에도 이야기한 것 같지만,
우리나라 향촌 사족들 이야기가 조선후기사 이해에 영향을 주다 보니
지방 사족들이 엄청난 영향을 주고 사족으로 권위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지만,
이런 것은 멀리 볼 것도 없이 문과 방목만 살펴봐도 근거가 없고,
중앙 사족의 힘과 권위가 워낙 강고하여 향촌 사족은 이에 비할 바가 없다는 것이 명확하다.
필자가 보기엔 조선 후기 영남 남인의 몰락이라는 점도 과장된 바가 많은데,
15-16세기 사림의 대두와 함께 일시적으로 중앙정계에서 활동한 기억을 가지고
그 이후 퇴조를 영남 차별이라는 시각으로 재단하는 것은 전혀 맞지 않다.
이 점은 학계에서도 누차 지적이 나온 것 같지만,
조선후기 영남 차별론은 그 당시 그 지역 향촌 사족 사이에서는 공유되던 감정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다른 지방에 비해 차별 받았느냐,
전혀 그렇지 않고 이 지역 사족의 다른 지역에 대한 우위는 조선이 망할 때까지 지속되었다고 봐도 된다고 본다.
딱 하나 예외가 중앙 사족인데 향촌 사족에 대한 중앙 사족의 우위는 영남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고,
전국 향촌 사족들이 모두 다 그 모양이었으니 굳이 중앙 사족과 비교하여 차별 운운은 잘못된 관점이라 할 것이다.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지금 조선후기를 바라보는 시각의 상당 부분이 집안 야사에 근거한 낭설이 많은 바,
막말로 이야기해서 조선시대 사정이야 지금 그 시대를 살아 본 이가 전혀 없는데 누가 감히 그 시대는 이렇다고 정담하여 말할 수 있겠는가,
지방 향촌사족의 전승이야 어쨌건 간에 철저하게 문헌에 입각하고,
오직 믿을 만한 전거에 근거하여 잘못된 낭설은 모두 논파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우리나라 조선 후기사는 당쟁에 한 발을 담근 향촌 사족들 시각에 의해 상당히 왜곡된 바가 많다고 필자는 보는데,
집안 야사나 전승에 입각해서 한국사를 재단 하는 것은 이 시대를 바라보는 우리 모두 철저히 금기로 삼아야 할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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