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단장께서 방추차, 반달돌칼 이야기를 쓰는 김에
필자도 평소의 의문을 하나 조금 풀어보기로 한다.
바로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와 삼국시대
옷의 디자인에 대해서다.
필자는 이쪽 전공이 아니라 매우 조심스러운데,
삼국시대 옷이야 무덤 벽화등 실물에 준하는 증거들이 있으니
비교적 정확히 그렸으리라 보지만,
우리나라 신석기-청동기시대 옷 디자인을 보면
예외 없이 통 옷감을 한 군데 구멍 뚫어 흥부네 집 애들처럼 입고는
허리에는 띠를 둘러 묶은 모습으로 그려 놓는데
이거 과연 정말 그럴까.
왜 필자가 이렇게 의문을 갖는지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유명한 외치-.
외치가 발견된 알프스 꼭대기에서, 외치 자체는 벌거벗은 모습으로 발견되었지만,
그 주변을 뒤지니 당시 그가 입던 옷을 많이 수습하여
그 당시 이 양반이 입던 옷은 상당히 많이 복원되어 있는 바,
그 디자인을 보면, 철기시대, 혹은 심지어는 중세의 유럽인 옷에도
모티브가 같은 것이 아닌가 싶은 옷을 입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무슨 말인가 하면 유럽인의 옷은 아마도 신석기시대 이후
그 기본적 모티브는 크게 변화지 않고 이어졌으리라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신석기, 청동기 시대의 옷과
삼국시대 옷은 그렇게 디자인이 다른 모습으로 복원해 놓는 것일까?
필자가 보기엔 청동기-신석기시대 옷을 저렇게
흥부네 집 자식들 입는 옷처럼 직물에 구멍 뚤어 거기에 머리를 넣고
허리에는 띠를 둘러 조여 입는 모양으로 복원하는 것은,
필자가 아는 한 기록으로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 왜인전에 나와 있는 다음 기술 이외에는 없다.
婦人被髮屈紒, 作衣如單被, 穿其中央, 貫頭衣之.
그렇다면 한국의 신석기 청동기인들도 같은 방식으로 천에 구멍을 뚫어 머리를 넣고 허리를 졸라 매어 입었을까?
필자는 삼국시대 옷 모양의 근간은 이미 신석기 청동기 시대에 완성되어 있었으리라 보는데,
청동기 시대 군장 옷을 복원 해 놓은 것도 흡사 시베리아 샤먼의 옷처럼 복원해 놓은 것을 보았는데
솔직히 동의하기 힘들다.
삼국사기 우리 조상들의 옷 모양은 청동기, 신석기시대에도 이미 그 골격은 완성되어 있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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