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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청화백자 모란무늬 항아리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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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사 전공자 방병선 선생님께서 도자기 스케치를 책으로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하셨는데, 사실 도자기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걸 그리는 건 다른 문제라서.

일단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걸 시험삼아 그려보고, 횡설수설이나마 글도 하나 적어본다.

내가 분원자기를 좋아한다고 하면 다들 뜻밖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고려 전공이니 고려자기겠지 또는 요즘 유행인 달항아리겠거니 하다가 의외의 답을 들으니 그런가 싶은데, 그럴 때면 답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준다.

"19세기에 분원에서 나온 청화백자 모란무늬 항아리, 그 청백색 때깔의 둥근 항아리를 좋아합니다."

꽤 흔한 형태에 문양이다. 가격으로 봐도 그리 비싸지 않다.

입술 아래 살짝 턱이 있는 걸 보면 뚜껑이 있었던듯 한데 남아있는 걸 보진 못했다.

그 시절에 꿀이나 장이나 뭐 그런 액체류를 담았던지?

조선 청화백자 전성기는 보통 19세기 초-중반이라고들 이야기한다. 정치적으로는 서서히 내리막을 걸었지만, 오히려 문화적으론 경화사족을 필두로 하는 도시 사대부 취향이 꽃을 피웠다고나 해야 할까.

특히나 그 윤기나는 유백색도 아니고 고고한 설백색도 아니고, 살짝 쩡한 푸른기가 도는 청백색은 참 '귀족적'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요즘 도예가들도 그 분원의 청백색 유색을 재현해내는 이가 거의 없다던가. 겉으로는 낮고 속으로는 깊은 굽에 청화 선 한 줄 그은 것도, 우리는 뭔가 다르다는 걸 보여주마는 게 느껴진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둥근 생김새며 모란을 그린 솜씨는 수더분한 느낌, 고유섭 선생 표현으로는 "구수한 큰 맛"이 느껴진다.

청나라 때 경덕진 자기나 일본 이마리야키의 청화백자와는 전혀 같지 않고, 원나라 명나라 영향을 짙게 받은 15세기나 문인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16세기 조선 청화백자와도 다르다.

'큰전고간'이나 '운현' 명문이 들어간 것부터 19세기 말 분원이 폐지되고서도 만들어지던 하질의 것까지, 정말로 이 모란항아리야말로 조선 사람이 만들어 조선 사람이 쓴 것처럼 여겨진다.

분원자기를 좋아하다 보니 광주 분원에도 한 세 번 다녀왔는데(그러고보니 이른바 조선 3대 가마터라는 강진 사당리, 공주 학봉리, 광주 분원리 다 가보았다), 갈 때마다 그 풍광에 감탄한다.

고개 들어 경치를 보다 고개를 내려 땅바닥을 보다보면 하얀 눈의 파편이 곳곳에 반짝이는데, 더러 청화선 그어진 굽이나 모란이파리가 그려진 쪼가리가 눈에 뜨인다.

그런 사금파리를 보면 괜히 반가운 것이...


*** Editor's Note ***

이참에 강민경 군을 끌어들인 이유를 잠깐 말해둔다.
강군은 내가 보기엔 진주다.

다만 아직 시운을 만나지 못해 고난이 많다.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시류 탓인가?
아님은 본인 탓인가?

나는 그가 잘하는 길을 터주었으면 했다.
그의 억울 분노를 표출할 통로를 터주고 싶었다.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다독이며 응원하는 말 한두마디만 보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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