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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가 그린 <완당선생 해천일립상>의 모습을 참조해 그려보았다.
추사가 실제로 대정 바다에 나가 본 적이 있는지는 약간 고민스럽다.
추사 제자 고환당 강위가 증언하기를 "선생은 10년간 울타리 밖을 나가지 못하셨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역으로 추사 문집엔 제주의 풍경을 보고 읊은 시들이 적지 않고, 또 추사가 존경한 동파가 나막신 신고 하이난 섬의 바닷가를 걸어다녔다 하지 않던가.
추사도 정당벌립에 나막신 차림으로 바다를 보았다 해서 안 될 것은 없겠지 싶다.
담계 옹방강 어른은 "옛 경전을 즐긴다" 하였고
운대 완원 어른은 "남이 말한 것을 또 말하기를 즐기지 않는다"고 하였다.
두 어른 말씀을 내 평생 다했거늘
어찌하여! 바다와 하늘 사이에 정당벌립 하나 쓰고
문득 원우 연간의 죄인같이 되었는고.
- 김정희, <스스로 초상화에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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