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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최근 공개된 원구일영圓球日影에 대한 두 가지 소견! by 윤용현

by taeshik.kim 2022.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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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딱지 만한 시계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21년 미국 경매로 매입하여 며칠 전인 22년 8월, 언론에 공개한 원구형 해시계로 독특한 형태와 구조로 장안의 화제다.

그와 관련해 두 가지 점을 놓치고 있는 듯하여 의견을 더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명칭에 관한 것이요,

두 번째는 앙부일구仰釜日晷 12지 시각 표기법을 따른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는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 공개한 일영원구日影圓球 보도자료와 사진, 그리고 방송에 보도된 영상 속 자료를 참고하여 그 구조와 특징을 살펴보면서 궁리한 생각이다.

이번에 공개한 원구형 해시계는 외형상 구조를 보면 일영日影, 북극고도 조정장치, 받침기둥, 받침대로 구성된다.

일영日影은 남북 극축을 중심으로 회전할 수 있는 원구형 해시계로, 지름 9cm 크기인 원구圓球는 상단 반구와 하단 반구인 2개 반구半球를 조립하여 하나의 원구圓球를 구성한다.

 

 

내가 보태고자 하는 소견 첫 번째, 즉 명칭과 관련해

이 원구형 해시계의 정확한 명칭을 알 수 있는 명문인 원구일영圓球日影이 상단 반구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바로 앞 사진).

현재는 일영원구日影圓球로 부르지만 소일영小日影, 앙부일구仰釜日晷처럼 형상이 앞에 오는 원구일영圓球日影으로 부르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두 번째, 상단 반구에 음각으로 12지 중 인寅에서 술戌까지 9개만 표기되고 해亥·자子·축丑이 표시되지 않은 것은 앙부일구의 전통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원구일영圓球日影 표면에는 시각 표기와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시각표기인 시각선時刻線은 상단 반구 둘레에 표기되어 있는데, 12시간의 12지十二支 명문이 새겨져 있고 매시는 초初·정正으로 2등분한 뒤 초와 정을 다시 4등분해 모두 8개 각刻으로 시를 나타내 하루를 96각법으로 등분한다.

96각은 조선후기에 청나라 시헌력時憲曆의 도입으로 1654년부터 사용한 것으로 본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12지 중 인寅~술戌 9개만 표기하고 해亥·자子·축丑이 표시되지 않은 점이다. 이 점은 12지 오정午正 아래 둥근 시보창에 표시되는 시패 인寅~술戌 9개만 있는 점도 같은 방식이다.

나아가 해亥·자子·축丑이 표기되지 않은 것은 앙부일구의 전통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작년에 보물로 지정된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성신여대 소장 앙부일구와 표기법과 같은 것이다(마지막 사진 2장 참조).

다만, 앙부일구와 다른 점은 12지에 해亥·자子·축丑 대신에 행시도行時度라는 세 글자가 표기된 점과 시계 방향의 12지 아랫줄에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번 더 12지 명문이 표기된 점이다.

앙부일구에 표시되지 않은 행시도行時度가 무슨 의미인지는 추후에 다시 논의가 필요하며, 또 하나의 12지가 반대 방향으로 표기된 것은 남반구에서도 시간 측정이 가능하도록 설계한 것으로 생각한다.

 

 



시간 측정장치인 영침은 하단 반구에 설치되는데, T자 형태의 횡량이 그것이다.

태양이 뜨고 지는 동안 남쪽 반구와 함께 횡량을 태양과 수직으로 일치하도록 회전한 뒤, 횡량 끝 영침 그림자가 가르키는 북쪽 반구에 표기된 12지 시각선을 읽어 시간을 측정토록 설계되었다.

남쪽 반구가 회전하면서 동시에 시보창時報窓에 12지의 시패時牌가 나타나 시간을 시각적으로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12시패에 의한 디지털 방식은 혼천시계 전통을 이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원구일영의 북극고도北極高度 조정장치는 관측지점에 따라 위도가 달라지더라도 회전축인 북극고도를 조정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말하자면 서울, 대전, 부산 등 어느 곳에서도 시간 측정이 가능한 것이다.

 



이 원구일영은 재질이 구리, 황동, 철 3가지를 사용하는데, 일영은 구리, 받침기둥은 황동, 받침대는 철로 만들었다.

특히 받침대 표면에는 은상감으로 일日, 월月, 용, 항해하는 선박을 표현하는데, 특히 선박 그림은 이 원구 해시계가 선박용으로 제작되었을 것으로 짐작케 한다.

받침대에 은삼감 기법으로 글과 그림을 표현한 것과 달리 일영의 상단과 하단 반구에 있는 12지와 제작시기 명문, 시각선 등에는 은상감을 베풀지 않은 점에서 기존 앙부일구와 다른 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인사동 출토 중종 자격루의 주전 중 경점용인 1전一箭의 새김 방법과 같다.

 



이 원구일영圓球日影은 제작 시기와 제작자[사용자?]를 알 수 있는 점에서 중요한데, 하단 반구에는 ‘대조선 개국 499년 경인년 7월 상순에 새로 제작하였다[大朝鮮開國四百九十九年庚寅七月上澣新製]’는 명문이 음각으로 새겨졌으며, 또한 ‘상직현 인尙稷鉉印’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1890년에 상직현이라는 인물에 의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는 점에서 한국과학기술사에서 차지하는 가치가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

 

尙稷鉉印



그러나 고민스러운 것은 이 원구일영圓球日影이 세계 시계발달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일까 라는 점이다....,

그 당시엔 더욱 정밀한 회중시계, 태엽시계 등이 사용되던 시기인데...., 비교해 볼 때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된 원구형 해시계라는 점과 지역에 상관없이 어느 곳에서도 시간 측정이 가능했다는 점, 그리고 시각 표기에서 앙부일구와 혼천시계의 전통을 따랐다는 점에서 독특한 과학문화유산임에는 틀림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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