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고고학자도들이 서기 79년 베수비오 산 폭발로 파괴된 고대 로마 도시 폼페이를 발굴하는 한 장면이다.
재앙적인 폭발로 폼페이는 화산재와 부석으로 뒤덮여 도시와 그 비극적인 마지막 순간을 보존했다.
오늘날 폼페이는 고대 로마 도시의 일상을 엿보게 하는 독특한 창을 제공한다.
비극이 선사한 특혜다.
저 장면에서 유의할 점은 흰색을 띠는 시신들이다.
시신이 저리 보존되었을 리는 없다.
저건 인공으로 발굴하는 과정에서 고고학도들이 만든 캐스트cast다.
1863년 이탈리아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Giuseppe Fiorelli가 개발한 기술을 사용해 만든 석고 모형이다.
발굴자들은 굳어진 화산재에서 저와 같은 사람이나 동물 시신, 혹은 다른 유기물질이 녹으면서 생긴 구멍을 발견하고는
그 구멍에다가 액체 상태인 석고를 부어서 굳히면 비극의 마지막 장면을 재생할 수 있음을 알아냈다.
이 점에서 저 방식을 개발한 피오렐리는 혁신자였다.
그가 쓴 방법은 다음과 같고 이 방식이 근간에서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1. 구멍을 액체 석고(나중에 더 나은 보존을 위해 수지로 대체)로 채운다.
2. 석고를 굳혀서 원래 형태의 상세한 모형을 만든다.
3. 주변 재를 발굴하고 캐스트를 드러낸다.
사진은 3의 과정을 보여준다.
이런 실험은 대성공이었다.
희생자 위치뿐만 아니라 그의 옷차림, 표정, 마지막 순간에 들고 있던 물건까지 세세하게 포착하게 된 것이다.
캐스트는 폭발의 공포와 혼돈의 순간을 생생히 재현해냈다.
베수비오 산은 폭발하면서 과열된 가스, 화산재, 화쇄류 등 치명적인 조합을 뿜어냈다.
1만5천 내지 2만 명을 헤아렸을 폼페이 주민 중 다수가 극심한 열기로 현장에서 즉사했고, 다른 사람들은 탈출을 시도하다 땅에 묻혔다.
갑작스런 매장에 건물, 프레스코화, 모자이크, 일상용품 등은 놀라울 만치 자세한 상태로 그대로 묻혀 보존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 비극이 이런 축복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인체는 저 화산재에 거의 다 녹아 없어졌지만 일부 두개골 같은 데는 보존되기도 한다. 이는 내가 현장에서 확인하기도 했다.
저 사진에서도 보면 일부 인골은 모자 같이 머리에 두른 흔적을 엿보는데, 내가 보기에는 녹지 않은 두개골이다.
저때는 몰랐으나 요즘은 저렇게 남은 뼈에서 추출한 DNA 분석을 통해 놀라운 사실들을 더 밝혀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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