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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충주 장미산성 처음 쌓은 데는 백제"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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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산성 내부 백제 그릇들

 
국립중원문화유산연구소(소장 조상순)가 충주에 소재하는 삼국시대 산성인 장미산성을 발굴한 결과

이 성을 처음 쌓고 활용한 정치체가 백제임을 뒷받침하는 백제 토기를 다량으로 확인했다고 21일 말했다. 

충북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 산 73-2번지 일원을 조사한 이번 조사에서 성벽 안쪽을 발굴한 결과

흙으로 쌓은 성벽과 같은 시기에 사용한 부뚜막과 같은 취사 관련 시설을 확인하는 한편

그 주변에서 항아리, 시루, 삼족기三足器, 굽다리접시[고배 高杯] 같은 5세기 전반기 삼국시대 백제 토기로 분류하는 유물을 집중 수습했다고 덧붙였다.

연구소는 "출토된 토기는 장미산성 운영 시점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며, 백제 도성이었던 서울 풍납토성의 토기와 특징이 비슷하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면서 "이와 함께 산성 운영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인 물을 모아두는 집수시설도 일부 확인되었다"고 말했다. 
 

장미산성 출토 백제 그릇(왼쪽)과 풍납토성 출토 그릇들

 
이번 조사 성과는 축조 주체, 특히 이 성을 처음 쌓은 정치체가 신라인가 백제인가 하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 장미산성 의문점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둘 수 있겠다. 

한강을 따라 충주 분지로 진입한다 할 때 그 길목에 위치한 장미산성은 삼국이 치열하게 그 쟁탈을 위해 전력투구한 요충 중 하나다.

이를 밝히고자 2022년 10월 시작한 연차 발굴에서는 그 실마리를 얻고자 북쪽 성벽을 아예 몽땅 쨌다. 

그 결과 성벽은 처음에는 흙을 켜켜이 치밀하게 다져 쌓았으며(최대 너비 11m, 높이 5m 내외), 이후 어느 시점에는 돌로 쌓는 방식으로 변화했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토축 성벽

 
후대에 쌓은 석축 성벽은 먼저 만든 토축 성벽 바깥면을 일부 절단하고 안쪽과 바깥쪽 모두 돌로 쌓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이 석축 성벽 규모는 너비 7m, 높이 3m 이상으로 추정한다.

연구소는 "이번 발굴조사로 기존에 돌로 쌓은 석성으로 알려져 있던 장미산성이 처음에는 토성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고, 이를 쌓았던 세력이 삼국시대 백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었음을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면서 "향후 일부 확인된 집수시설 등에 대한 추가 발굴조사를 통해, 산성의 운영과 생활상을 상세하게 규명하고, 나아가 성벽과 성내 시설의 구조를 명확히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내부 부뚜막

 
현장은 22일 오전 10시 30분(학술간담회)과 오후 2시(공개 간담회) 총 2회에 걸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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