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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판화가 구현한 1940년, 서라벌 달밤

by taeshik.kim 2023.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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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미술사를 뒤적이다보면 판화 이야기를 꽤나 만나게 된다.

전통적 우키요에나 니시키에뿐만 아니라 신판화라 해서 거기 Modern을 입힌 것, 케테 콜비츠나 루오 그림처럼 선 굵은 판화도 유행했고.

그런 만큼 판화가도 많았는데, 그중 히라쓰카 운이치平塚運一(1895-1997)라는 이가 있었다.

102살이라는 기록적 장수를 누렸다는 것이 우선 눈길을 끌지만, 그보담도 서양화가 이시이 하쿠테이石井柏亭(1882~1958)와 판화가 이가미 본코쓰伊上凡骨(1875~1933)의 제자로써,

철저한 분업체제였던 일본 목판화 제작방식을 바꾸어 제작 전 과정을 작가 한 사람이 도맡는 '창작판화'의 대표작가로 일본에선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일본 근대미술가 중 안 그런 이를 찾기가 어렵긴 하지만, 히라오카도 조선을 소재로 한 작품을 더러 남겼다.

부여 정림사 오층석탑을 소재로 한 <백제의 옛 수도>란 작품이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 있고, <왜한삼재도회>에 나오는 조선 사람의 모습을 자기식으로 복각한 작품 실물을 본 적이 있다.




여기 이 작품도 '조선'을 소재로 한 판화다.

"게이슈 셍세이다이" 곧 경주 첨성대인데, '첨성'을 한자로 쓰기 복잡했던지 히라가나로 풀어버렸다.

1940년 작이라니 그가 마흔여섯살 되던 때다. 그때 그가 조선에 왔었던가 는 연보를 찾아봐야 알겠지만, 뭐 사진이나 기억을 더듬어 만들었을 수도 있으니까.

제목처럼 가운데 우뚝 솟은 첨성대 모습이 완연하다.

하늘엔 조각달이 떠있고, 그 아래 둥근 신라무덤과 초가지붕의 선이 넝청거린다.

날이 겨울에 가까운지 나무에 이파리 하나 없는데, 빈 밭엔 바람이 불고 사방은 고요하다.

오늘날 첨성대 주변의 모습과 견주자니 격세지감이 든다.

별 꾸밈도 설명도 없이 이런 정경을 손바닥만한 판 위에 이룬 걸 보면, 다른 작품을 보지 않고도 작가의 솜씨를 짐작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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