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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페르시아 문화탐방> ⑤ 카스피해 인근 길란 지역 동굴 유적을 찾아서

by taeshik.kim 2019.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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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문화탐방'이라는 2008년 연재는 앞서 소개한 네 편으로 완성되었다. 하지만 이 네 건 말고도, 이 탐사여행을 정리한 기사가 두어 건 더 있으니, 이번에 소개하는 카스피해 인근 길란 동굴유적 발굴 계획을 소개한 기사 역시 개중 하나다. 이걸 저 문화탐방에 포함하지 않은 까닭은 성격이 달랐기 때문이다. 



길란 가는 길. 어느 쪽 도로를 잡았는지 지금은 기억에 없지만, 기사를 보니 라시드 쪽으로 향했다.

길란으로 가는 눈길 빙판길.



저 '문화탐방'은 당시까지만 해도 국내에는 생소한 편인 이란 지역 문화유산을 새삼스레 정리한 것인데 견주어, 아래에 소개하는 기사가 다루는 안건은 그와는 성격이 좀 달라, 이번 답사를 기획한 한양대문화재연구소가 기획하는 한-이란 공동발굴조사 계획 일환이었던 까닭이다. 



이란의 도로휴게소

휴게소의 이란인

휴게소서 난을 굽는 사람들

난으로 허기를 떼우고

뇐네들한테 난을 배달하는 이한용. 지금은 뒷짐진다.



기사가 말하는 동굴유적 탐방을 위해 이번 탐방단에 포함된 기자들인 나와 경향신문 이기환, 서울신문 서동철, 그리고 당시에는 한국토지공사 소속인 심광주와 김충배, 당시에는 국립문화재연구소에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던 신희권(현 서울시립대 교수), 그리고 주최측을 대표해 이한용 선생(현 전국선사박물관장)이 일행에서 떨어져 나와, 현지 이란 문화재 관련 국립기관에서 일하는 연구원이 운전하는 차량을 이용해 산을 올라올라 동굴 현장으로 갔던 것이다.  


뭐 볼짝없이 한양대 마피아 중심이다. 심광주 이한용 김충배가 그 마피다 일원들이다. 


길란으로 가는 도중 자마니 계곡(Zamani Alley)라는 곳에서 만난 로샨교(LOSHAN HISTORICAL BRIDGE). 그 다리에 대한 이란쪽 한 관광사이트 설명은 다음과 같다. Located in Gilan province, prior to the construction of the present Qazvin - Rasht Highway, and the new concrete bridge, the old Loshan bridge was the only means of connection across the Shah Rood River(샤루드강). Some researchers claim that it was built in the times of Khosrow Khan Gorji, the governor of Gilan during the reign of Fath Ali Shah Qajar. undefined But it seems to be a construction of the 9th century AH. (copyright i t t o . org) It is 102 m. (copied from itto.org) in length, and has two small and two large arches. (copyright i t t o . org) A large chamber at the base of the bridge provides shelter for caravans. (main article on: itto org) The said bridge is a part of the history of the province. undefined . (main article on: itto org) _ Read more at itto.org: http://www.itto.org/iran/attraction/2000-Loshan-Historical-bridge,-Loshan/

로샨다리



자마니 계곡의 로샨교


그날 기상 환경이 아주 좋지 않았다 기억하거니와, 테헤란을 떠나 현장으로 가는 길에 눈이 많이 내렸다. 우리가 떨어져 나온 일행은 카스피해를 구경한다고 그쪽으로 갔다. 나중에 다시 합류하니 추워서 얼어죽는 줄 알았다 한다. 물론 그렇다 해서 산속 동굴로 간 우리가 사정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길란으로 가는 길. 자마니 계곡 근처



다만, 카스피해는 나 역시 보고 싶었지만,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었으니, 그 점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거니와, 언제나 이럴 때면 다음 기회를 기약하기는 하지만, 그런 다음 기회를 실현한 때가 일생에 몇 번이었는지 돌아보면 한숨만 푹푹 나오기 마련이다.  


이번 여행 이란 답사자 다라비(Darabi)씨 관광가이드 허가증. 이란판과 영어판이 있다. 그는 일본어도 잘 한다.



동굴은 험준한 산속에 있었다. 그 동굴로 오가는 길에 주로 목축을 하는 이란 현지 산촌들을 스치듯 마주했거니와, 언제 기회가 닿으면, 이들 산촌 현지조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 고3생 성욕처럼 타올랐다는 말을 해 둔다. 그런 날이 있을란지 모르겠지만, 꼭 내가 아니라 해도,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나타났으면 한다.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 있는데 내가 모르는지는....



동굴을 찾아 떠나기 전 전의를 다지며


 

<카스피해 오지 동굴유적 발굴현장을 찾아서>

한양대팀 이란과 길란 구석기 유적 공동조사 

[2008.02.17 송고]


(라시트<이란>=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이란에도 총알택시가 있다. 이를 이용하면 버스로는 제아무리 도로 여건이 좋아도 4시간 이상 걸린다는 테헤란에서 카스피해 남쪽에 연한 길란(Gilan)의 주도(州都) 라시트(Rasht)까지의 길을 두 시간이면 너끈히 주파한단다. 하지만 총알택시를 방불하는 자동차를 실제 탈 줄은 몰랐다. 



동굴을 찾아서



지난 10일, 버스로 테헤란을 출발해 빙판길로 변한 험준한 엘루르즈 산맥을 기어가다시피 넘어 7시간 만에 라시트에 도착한 일행을 옮겨 태운 자동차 2대는 어디론가 쏜살같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속도계를 보니 150㎞ 부근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얼마 뒤면 해가 지는 까닭에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며 기자들을 인도한 이한용 한양대 문화재연구소 조사팀장은 말했다. 


이렇게 마음을 졸이며 달리기를 30-40분. 저 멀리 험준한 산을 앞두고 일행은 다시 대기 중인 다른 자동차 2대로 갈아탔다.


동굴을 찾아 계곡을 내려가는 길. 저 노란잠바떼기. 가는 데마다 사진 찍는데 걸리적 거렸다. 경향 이기환 기자다. 헤헤 웃는다. 저 앞쪽에선 이한용 선생이 그 기념사진 찍어준다 저런다.



이번에는 총알택시가 아니라 청룡열차였다. 포장과 비포장이 뒤섞인 1차선 대관령 고개를 넘어가는 셈이었다. 이에 아랑곳없이 가속페달을 밟아 오르는 골짝 아래로는 양을 치고 차밭을 가꾸면서 살아가는 산촌마을 풍경이 펼쳐진다. 이 비좁은 산골 마을까지 전기가 들어온다는 사실이 뜻밖이고 왜 이렇게 험준한 산중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지도 궁금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외부에서 차가운 바람이 숭숭 새어들고 속도계는 언제 고장이 났는지 매양 80㎞ 주변에만 머무르는 낡은차가 힘은 얼마나 좋은지 가파른 산길을 용케도 올라간다는 사실이었다. 


이 험준한 산을 날라준 차량은 놀랍게도 프라이드인가였다.



이렇게 굽이굽이 돌아 능선을 지나고 이젠 내려간다는 느낌이 든지 얼마 안 되어 도착한 막다른 듯한 곳에서 일행을 안내한 발리 자하니(Vali Jahani) 길란 고고연구소 연구원이 내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양떼가 지나다니면서 만들었다는 좁은 길을 자하니 연구원의 꽁무니만 따라 기어내려 갔다. 절벽처럼 가파른 길은 진흙 투성이었다. 죽죽 미끄러지기기를 십 수번. 이렇게 20분 정도 갔을까. 


길란 지역 산촌. 양이나 염소 목축을 생업으로 하는 듯했다.



자하니 연구원이 손짓을 하는 곳을 보니 동굴이다. 하지만 이곳은 동굴이 작고 좁아 재미가 없단다. 오는 3월 한양대 문화재연구소와 공동발굴조사를 벌일 동굴유적 중 하나인 이곳에다 길란 고고연구소는 마을 이름을 따서 '리야루드 동굴 1'(Riarud Cave 1)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곳은 얼마 전에 자하니 연구원이 발견했다. 


'리야루드 동굴 2'는 이보다 조금 더 절벽을 내려간 곳에 있었다. 언뜻 보아도 먼저 본 동굴유적보다는 입구도 컸고 굴도 깊었다. 플래시로 안쪽을 비춰 보니, 꽤 들어간다. 


동굴 입구. 신희권인데, 뱀 있을까봐 지는 안 들어가고 김충배가 들어가서 조사했다.



한국 탐방단 일원에는 국내에서도 유물을 찾는 데는 "귀신"이라는 두 사람이 있었다. 토지박물관 심광주 조사실장과 같은 박물관 김충배 연구원이었다. 김 연구원은 자하니 연구원에게서 냅다 꽃삽을 뺏다시피 하고는 플래시를 들고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1분도 지나지 않아 그가 토기 파편들을 건네준다. 뿐만 아니다. 어떻게 찾았는지 고슴도치 가시와 동물 이빨도 들고 나왔다. 


김충배가 들고 나온 토기 골각기 종류를 살피고는 좋아라 했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자하니 연구원은 이렇게 수습한 토기를 가리키며 "early iron age"라는 말을 했다. 초기 철기시대에 속하는 토기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초기철기시대라면 기원전 300년-서력기원 전후를 지칭하나, 이곳은 세계문명 등장이 가장 빠른 곳이기에 대체로 기원전 10세기 무렵을 지칭한다고 이한용 팀장은 말했다. 


이 동굴 유적 방문에는 동행하지 않았으나 이번 페르시아유적 탐방단 인솔자이며, 한국-이란 공동유적 발굴단 한국측 단장이기도 한 배기동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대체로 초기철기시대 유물이 나오는 동굴이면 그 아래층에서는 후기 구석기시대 유물도 나온다"고 말했다. 


초기철기시대 토기 쪼가리 주워들고 설명하는 이한용 선생과 난폭 운전자 자하니 연구원. 듣자니 10여년이 흘러 자하니 연구원은 길란지역 고고학 최고 실력자가 되었다 한다.



한양대 문화재연구소는 이렇게 이란측에서 찾아놓은 동굴유적 중 20곳 가량을 이란측과 공동발굴조사하게 된다. 


험준한 산을 꽤 많이 올라왔다고 생각했으나 이곳 해발고도를 물으니 자하니 연구원은 600m 지점이라 한다. 


이한용 팀장은 "이 동굴유적들은 한국기자들에게 현장을 보여주기 위해 가장 접근이 쉬운 곳을 고른 것 뿐이며, 지난해 조사했거나 올해 조사해야 할 동굴 중에는 해발 2천m 고지에 있는 것도 있다"고 전했다. 


김충배가 동굴에서 들고나온 호저 가시와 골각기



이런 이역만리 오지에서 한국고고학이 직접 발굴을 벌이는 시대를 맞은 것이다. 


이 프로젝트 정식 이름은 '페르시아 지역에 대한 한국-이란 고고학 공동조사'.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 지원을 받아 지난해에 이어 올해 일단은 완료될 예정이다. 지난해에는 동굴유적 15곳을 발굴했다. 


그 성과는 놀라웠다. 카스피해 연안에서 처음으로 무스테리안 식(式) 중기 구석기시대 유물(긁개)을 발굴한 것이다. 무스테리안 문화란 10만-5만년 전 네안데르탈인이 이룩한 문화를 말한다. 


지표조사 마쳤으니 간단한 기념촬영은 해주고..그나저나 나는 없네?



구석기문화 전공인 배기동 교수가 길란 프로젝트를 입안한 까닭은 인류의 이동 루트를 추적하기 위함이었다. 현재까지 연구성과에 의하면 인류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등장해 세계 각지로 퍼졌다. 이에 의한다면 한반도 구석기시대인은 아프리카를 떠나 카스피해 남안을 지나는 대륙길을 따라 왔을 것이다. 


이미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구석기유적 발굴을 벌인 경험을 축적한 배 교수팀은 이에 이 길란 주 일대에서 그런 흔적을 찾고자 이번 프로젝트에 착수한 것이다. 


동굴로 통하는 길이 나 있는데, 이는 이곳에 방목하는 염소나 양이 만든 길이다.



물론 인류는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카스피해 연안도 그 후보지 중 한 곳일 수 있다. 


"혹시 알아? 나도 180만 년 전 인류화석을 찾은 고고학자로 기록될지?"(배 교수)


성과는 아무도 예단할 수 없으나 배 교수 팀은 구석기인들의 이동경로와 이란지역의 구석기문화 진화과정, 그리고 5만년전 현생인류의 이행 과정 등에 초점을 맞춘 조사를 진행하게 된다. 


답사갈 적에 노란색은 되도록 피하라. 노란색만 도드라진다. 저 잠바떼기 벗겨버리고 싶었다.



지난해 1차년도 조사성과에 대한 이란 국내 반응은 좋다. 구석기 고고학 전공자가 한 명도 없다는 이란 고고학연구소에서는 최근 수습한 구석기 유물을 감정하기 위해 그것을 직접 들고 배 교수를 찾아오기도 했으며, 지난해 구석기 유적 발굴 성과는 이란 국영 TV를 비롯한 언론을 통해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이런 관심은 주이란한국대사관이 스크랩해 놓은 현지신문 보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탐방에 동행한 조유전 토지박물관장은 "한국고고학이 최근 들어 해외조사를 확대하기 시작한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라면서 "특히 이란 지역 조사는 양국 문화교류 차원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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