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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평등하지 않은 죽음, 에스와티니 수상의 코로나 죽음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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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서는 예외가 없다. 살아있는 모든 건 죽기 마련이다. 한데 이에도 불평등이 엄연히 존재한다. 죽음을 당기는가 늦추는가는 순전히 응급의료의 힘이다. 그 유감없는 모습을 우리는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본래를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식민모국 영국과 피식민국 미국에서 모조리, 그리고 여실히 확인했으니 

 

먼저 스타트라인을 통과한 쪽은 영국이라, 이짝 또라이 수상 보리스 존슨이 코비드19에 감염되어 병원으로 후송되어 산소호흡기에 의지하며 죽느니 사느니 하는 이른바 사경을 헤매다가 기적으로 살아났으니, 그를 살리고자 영국 의료진이 집중케어를 했으니, 이런 집중케어가 없었으면 그는 골로 갔다. 

 

더 웃기는 불평등의 선두주자는 미국 쪽 도널드 트럼프. 그가 참말로 운이 좋았던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첫째, 미국 의료진과 의료시설이라는 그 막강 배경이 있었던 데다가 무엇보다 코로나 치료에 상당한 경험이 축적된 단계에서 걸렸다는 점이 그것이다. 

 

코비드19로 사망한 에스와티니 수상 Ambrose Dlamini

 

이 두 가지를 무기로 입원 사흘만인가 너끈히 살아돌아와서는 한다는 말이 참말로 밥맛이라, 코로나 암것도 아이더라 뭐 이런 요지였다고 기억한다. 그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분노를 표시했거니와, 너야 쓰벌놈아 최고 시설에서 최고 치료를 받아서 그렇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겠냐 는 것이었거니와, 암튼 이 밥맛인 친구는 최고 의료진에 최고 의료시설만 있으면 코로나도 어느 정도 버틸 만하다는 결론을 도출한 것이다. 

 

따라서 말하노니, 죽음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나, 죽음 앞에 모든 인간은 불평등하게 태어났다. 

 

그러는 와중에 Eswatini 에스와티니 프라임 미니스터가 코비드19 공격을 받고는 마침내 산화하고 말았다는 소식이 날아든다. 이번 코로나팬데믹에 희생된 첫 국가지도자라는 자랑스럽지 아니한 타이틀과 함께 말이다. 그 감염판정을 받고는 인근 남아공 병원으로 긴급 후송된지 2주만에 저승으로 갔단다. 

 

왜 꼭 이런 때 그 첫 희생자는 아프리카 이름 없는 국가 지도자인지 참 지구촌은 불평등하다. 그 나라 이름도 생소한 판국에 내가 그 수상 Ambrose Dlamini 가 누구인지 어찌 알겠는가? 내가 사돈에 팔촌도 아닌데 말이다. 올해 쉰둘. 아이고야 나보다 어리다.

 

 

 

에스와티니

 

www.google.com

 

그건 그렇고 에스와티니? 저건 언제 어케 생겨난 나라임? 대체 아프리카 어디 있는 거임? 찾아 보니 뿔싸 저 국가가 이전 이름이 스와질랜드 Swaziland 란다. 그래 그나마 스와질랜드는 이름을 좀 들어봤다. 구체로 아프리카 어딘지는 아리까리하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고 그 나라 최고지도자가 자국 병원도 아닌 남아공으로 가야 한 이유가 뻔하지 않겠는가? 오죽했으면 쪽팔림 무릎쓰고 자국 병원 버리고 남아공으로 갔겠는가? 

 

루소는 틀렸다.

 

인간은 불평등하게 태어났다. 그래서 죽음도 불평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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