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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는 입맛대로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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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근자 한국사회에서 자유라는 말만 꺼내기가 무섭게 신자유주의와 대치하고는 막말을 쏟아내던 자들이 신통방통하게도 이 표현의 자유만큼은 지네 꼴리는대로 끌어다가 민주주의의 성전으로 삼는 꼴을 본다.

그 어떤 경우에도 풍자는 신랄하되 바늘을 찌르듯이 아파야지 모멸과 굴욕과 복수의 정념을 낳아서는 안 된다.

 

 

2015년 1월, 잡지 샤를리 엡도에 대한 이슬람테러공격 희생자 추모식

 


프랑스 무슨 잡지인지 언론의 도를 넘는 풍자는 경멸이었고 이는 결국 참사를 불렀다.
그 어떤 경우에도 저런 테러가 용납될 수 없듯이 풍자를 뛰어넘는 조롱 또한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용납될 수 없다.

 

(2015. 1. 14)

***

 

저 시점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검색해 보니, 그 무렵 프랑스에서 발생한 이슬람에 의한 잡지사 테러 사건을 말한다.

2015년 1월 7일, 파리 중심부에 위치한 주간지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 사무실에 총과 로켓포 등으로 무장한 괴한들이 침입해 총을 난사하는 바람에 잡지사 직원 10명과 경찰관 2명을 포함한 총 12명이 사망했다.

당시 보도를 보면 괴한들은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다)"고 외치며 총질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희생자 중에는 잡지사 편집장 스테판 샤르보니에를 필두로 장 카뷔를 포함한 유명 만평작가 4명이 포함됐다.

1992년 샤를리 엡도에서 만평작가로 일하기 시작해 2009년 편집장에 취임한 샤르보니에는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를 풍자하는 만평을 여러 번 실어 살해위협을 받았으며, 이것이 결국 반발을 불러 저와 같은 참사로 발전했다. 

 

마침 저 무렵 국내에서는 '박근혜 풍자 포스터'가 문제가 됐다. 팝아티스트 이하(본명 이병하) 씨가 2012년 6월 말,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백설공주 옷을 입은 채 박정희 얼굴이 그려진 사과를 들고 비스듬히 누운 모습을 그린 포스터 200여장을 부산시내 광고판에 붙였다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가서 2014년 6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문제가 된 샤를리 엡도 풍자만화

 

 

 

또 그 무렵엔 민중미술가 홍성담에 의한 일련의 박근혜 풍자 그림도 논란이 됐다. 개중 하나가 박근혜 출산 그림으로 통한 풍자화였으니, 만삭인 박근혜가 선글라스를 낀 아들 박정희를 낳는 장면을 묘사한 장면이었다.

이를 소재로 하는 그림 중에서는 이른바 야동급으로 보일 만한 소지가 있는 작품도 있었다. 

 

저와 같은 사태에 즈음해 당시 나는 "그 어떤 경우에도 저런 테러가 용납될 수 없듯이 풍자를 뛰어넘는 조롱 또한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용납될 수 없다"고 했거니와, 말이 쉽지 이게 사안마다 어찌 판단해야 하는지는 나 역시 헷갈리는 일이 많다.

다만 내가 저때나 지금이나 시종일관하는 문제의식은 그 흔들림없는 잣대의 중요성이다. 

 

그것을 조금 더 상술하면 아무리 풍자라 해도 나는 신체 혹은 외모 비하를 전제로 하는 그 어떤 풍자도 동조할 생각없다. 이명박 박근혜가 싫다 해서 그들을 특정한 동물에 견주는 일은 반대한다.

풍자 역시 얼마든 품격이 있을 수는 있다. 촌철살인해야지 신체나 외모 비하를 바탕에 깐 풍자는 풍자가 아니라 모멸이다. 

 

 

홍성담 풍자화. 논란이 된 박근혜 출산장면은 부러 게재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내가 지적하고 싶은 대목은 그 초지일관성이다. 같은 도덕잣대가 적용되어야 한다. 

 

어떤 때는 공격받는 자리에서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운위하면서 스스로를 변론 방어했다가, 시대가 바뀌어 공격하는 위치가 되어서는 그런 공격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범위를 넘어섰다고 때려잡지 못해 환장한 모습을 보이는 꼴이 심히 구토가 난다. 

 

근자 그 비근한 사례로 문제의 목사 전광훈에 대한 선거법 위반·대통령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1심 판결에 대한 여러 반응을 들 수 있으니, 두 가지 혐의에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자, 친정부 친여성향인 사람들을 중심으로 무슨 이런 판결이 있냐는 갖은 비판이 쏟아졌거니와, 내가 참말로 의아한 대목은 그런 반응을 보이는 대다수가 실은 박근혜 풍자화 사건에서는 전연 반대하는 모습을 보인 까닭이다. 

 

그때는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운위하던 그들이 이번에는 정반대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물론 그네들이야 사안이 다르다 강변하겠지만, 내 보기에는 근간이 같은 사안이다.

오로지 내가 반대하는 정파라 해서, 혹은 반대로 내가 지지하는 정파라 해서 같은 사안을 두고 형용모순하는 반응을 보일 수는 없다. 이는 자가당착이며 이율배반이다.

풍자는 모멸이 아니라 정곡찌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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