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113)
청청수중포 세 수(靑靑水中蒲三首) 중 첫째
당 한유(韓愈) / 김영문 選譯評
푸르고 푸른
물속 부들
그 아래
물고기 한 쌍
그대 지금
농(隴) 땅으로 떠나면
나는 여기서
누구와 살아요
靑靑水中蒲, 下有一雙魚. 君今上隴去, 我在與誰居.
한유는 시보다 문장으로 더 유명한 학자다. 안사의 난(安史之亂) 이후 유종원(柳宗元)과 함께 중당의 고문운동(古文運動)을 이끌었다. 위진남북조 이래로 공허하고 화려한 변려문(騈儷文)이 유행하자 한유는 “문장으로 성현의 도를 담아야 한다(文以載道)”고 강조하며 한나라 이전의 질박하고 실질적인 고문 전통을 회복하자고 주장했다. 이 시도 그런 영향 때문인지 『시경』과 초기 오언고시의 기미가 짙게 배어 있다. 우선 첫째 구와 둘째 구에서는 물속에서 자라는 부들과 그 아래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한 쌍을 읊으며 시적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시경』에서 흔히 쓰는 작시 기법 흥(興)이다. 그럼 첫째 구와 둘째 구는 뒷 구절과 어떻게 연관이 될까? 쉽게 연상할 수 있다. 부들 풀 아래에서 함께 노는 물고기 한 쌍을 부러워하며 사랑하는 연인 혹은 부부가 이별을 슬퍼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농(隴) 땅은 서북 변방인데 당시 남자들의 병역 복무처였다. 『시경』이나 악부시는 대개 당시에 유행한 민요이므로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한 내용이 많다. 소위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다. 그런데 고문운동을 추진하며 도학 전승자를 자처한 한유가 왜 이처럼 고시를 모방하여 남녀상열지사를 지었을까? 기존의 학자들은 『예기(禮記)』를 근거로 부부의 화합이 모든 예법의 바탕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불온한 현대인으로 살아가는 나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점잖은 도학자 한유가 부부의 화합을 빌미로 진정으로 남녀상열지사를 읊은 게 아닌가 의심하곤 한다. 유가경전인 『시경』이 당시 청소년들의 연애 교과서 역할도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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