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임금 이산 정조는 분을 쉽사리 참지 못하고 걸핏하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왕핏대의 대명사였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있지만, 그런 면모가 더욱 만천하게 폭로되기는 얼마전 한문학계에서 이른바 심환지라는 대신에게 보낸 어찰을 무더기로 발굴해 폭로하면서다. 이를 보면 정제하지 않은 정조의 인물 성향이 적나라하거니와, 걸핏하면 욕을 해대는 모습이 더러 등장한다.
근자에 조선후기 홍한주라는 사람이 저술한 필기류로 김윤조 진재교가 옮기고 임완혁이 윤문한 《지수염필智水拈筆》(소명출판. 2013.9) 권8을 내가 보니, 정조와 당시 좌의정 김익金熤(1723~90)과 관련한 일화 하나를 소개하거니와 이를 보니 사건 전개는 다음과 같다.
어느날 정조가 대신들과 군대를 몰고는 친부인 사도세자 묘역인 영우원永祐園, 곧 후대의 현릉원을 간 모양이다.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몸이 근질근질했는지 각 진영에 명을 내려서 동쪽 교외에서 군사 훈련을 하겠노라고 했다.
이렇게 되자 좌의정 김익이 나서 뜯어 말렸다. 그 말은 추리면 간단하다.
"아니...아부지 묘소에 참배하는 날은 경건해야 하는데요? 군사 훈련이라니요? 참아야지요? 남들 봅니데이."
이후 사건 전개 과정을 《지수염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간절히 아뢰기를 그치지 않으니 정조가 묵묵히 듣고는 달가워하지 않다가 결국 명을 거두었다. 궁으로 돌아온 다음에 공의 아들 김재판을 불러 들여 여러 번 하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네 아비는 충신이 되고 나는 걸桀 주紂나 다름없는 폭군이 되었다.'
이때 정조가 성내는 모습을 《지수념필》은 "以御手搶地厲聲"이라 했다. 옮기면 손으로 방바닥을 치면서 소리를 고래고래질렀다 정도가 된다.
핏대 오른 정조 모습이 선연하다.
동아시아 왕이나 황제와 관련한 기록을 보면 이와 같은 언급이 더러 보인다. 직언하다가 곤욕을 치른 사례 말이다.
심지어 남들 앞에서 왕을 공개 망신 주는 일에 분개한 어떤 군주는
"니가 후세에 칭송을 받고자 나를 개망신 주는 구나" 해서 남들 보지 않는 데다가 불러서는 쪼인트를 까기도 했다. 효종인지가 이런 짓을 했다고 같은 《지수염필》에 보인다.
효종이 창덕궁 후원에 작은 정자 하나를 지으려 하니 어떤 신하가 왕을 공개 망신 준 모양이다.
"지금 나라가 헐벗은데 정자라니요?"
사관과 승지도 물리치고 단독으로 이 신하를 궁으로 불러들인 효종
"넌 새끼야, 직언으로 이름을 남겨서 좋겠다. 야 씨발놈아, 덕분에 난 개망신 당했다."
그리하고는 대신의 궁댕이를 발가벗겨 버리고는 곤장 1대를 쳤다고 한다. 그러면서 효종은 "너, 이런 일 소문내면 지긴데이? 주둥이 조심해레이?"라고 겁박했다.
한데 이 일은 삽시간에 퍼져나가니 우리의 우암 송시열 선생.
"임금이 대신 궁댕이를 때렸대요"라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 버린다. 임금은 그리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였다.
(2013.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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