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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열받아 곤장 내리친 왕핏대 효종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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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림대군) 효종이 일찍이 내원內苑에다가 작은 정자 하나를 짓자 부제학 윤강尹綱이 상소하여 극진히 말하기를 


"백성은 곤궁하고 재물은 고갈했는데 토목 공사를 일으켜서는 아니됩니다."


라고 하니 말이 매우 절실하고 맞았다. 효종이 비답을 너그럽게 하고 또한 표범 가죽 한 벌을 하사해서 직언에 대한 상을 주도록 하고서는 다시 명하기를 부제학이 직접 궁에 들어와서 받아가도록 했다. 윤공이 할 수 없이 대궐로 가자 효종은 후원에 들어와 기다리도록 명했다. 그러고서는 부제학 혼자 들어오라 하고는 승지와 사관도 모조리 들지 말라 했다. 이윽고 윤공이 혼자 임금 앞으로 가자 왕이 갓 지은 정자에 앉아있다가 매우 노하여 꾸짖었다.

 


"이 정자는 몇 칸에 지나지 않는다. 설령 네가 이런 정자를 짓는다 해도 돈이 얼마나 들겠느냐? 나는 천승지국의 임금으로 몇 칸짜리 집을 지었을 뿐인데 이것이 과연 나라를 망치는 일이냐? 너는 이름을 얻고자 직언을 했으니 후세의 급암汲黯과 같은 직언을 한 사람으로 기록되겠지만 나는 무도한 임금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고는 결국 수하에게 곤장 한 대를 치라고 명령하니 윤공이 이렇게 말했다. 


"유신에게 욕을 보이는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좌우 수하에게 붙잡혀 끌려가서는 어쩔 수 없이 한 방 맞았다. 그러고는 효종이 친히 표범 가죽을 주고는 그 자리서 사은토록 명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곤장 받은 부제학과 곤장으로 다스린 임금 모두 쪽팔리니 이런 임금과 신하를 어디에 써먹겠느냐? 너는 돌아가서 집안사람들을 보더라도 이 일이 새 나가지 않도록 단디 조심해레이."


윤공이 이 일을 말하지 않았지만 그날로 서울 사람 대부분이 들어 알게 됐다. 뒤에 우암 송시열이 봉사를 올려 임금이 실덕失德했다 크게 소문을 낸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옥서(홍문관)의 신하가 엉덩이를 드러내고 피부에 상처가 났다"고 쓴 것이 이것이다. 


홍한주 지음, 김윤조/진재교 옮김, 임완혁 윤문 《지수염필智水拈筆》(소명출판. 2013. 9)

 

 

(2013. 11. 14)  

 

*** 

 

그제 아들 불러 아버지 혼낸 핏대 정조, 열받아 대신을 팬 버럭 효종 제하에서 소개한 효종 관련 일화 원전을 찾아 보충한다. 

 

 

 

아들 불러 아버지 혼낸 핏대 정조, 열받아 대신을 팬 버럭 효종

조선 후기 임금 이산 정조는 분을 쉽사리 참지 못하고 걸핏하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왕핏대의 대명사였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있지만, 그런 면모가 더욱 만천하게 폭로되기는 얼마전 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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