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부석사성보박물관 근무하다 지금은 송광사성보박물관으로 옮긴 김태형 선생 2016. 11월 11일 그의 페이스북 계정 포스팅이다. 매우 중대한 문제제기라 전재한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본존불과 관련된 여러 논문들을 살펴보면 아주 결정적인 실수들이 발견된다. 그런 실수들은 수정되지 않고 계속 인용의 인용을 거듭하고 있는데
분명 밝혀 두어야 할 문제다.
대표적이며, 치명적인 실수는 바로 부석사 원융국사비의 내용 인용이다. 대부분의 논문에서 이지관 스님이 번역한 것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는데 왜 원문은 살펴보지 않는지 의문이다. 아래는 이지관 스님의 번역문이다.
"이 절은 의상조사께서 중국인 서화(西華)에 유학하여 화엄(華嚴)의 법주(法炷)를 지엄(智儼)으로부터 전해 받고 귀국하여 창건한 사찰이다. 본당(本堂)인 무량수전(無量壽殿)에는 오직 아미타불의 불상만 봉안하고 좌우보처(左右補處)도 없으며 또한 전전(殿前)에 영탑(影塔)도 없다."
이 번역에서 무량수전을 本堂이라 하였으며, 일부 인용하는 연구자는 이를 金堂으로 해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비문의 원문에는 그런 말이 등장하지 않는다.
비문에는
"像殿內唯造阿彌陁佛"
이라고 등장한다.
즉 본당이 아니라 상전像殿이다. 상전에 대해서는 작년에 쓴 논문에서 이곳이 '강당講堂'임을 밝힌바 있다. 像殿의 용례에 대해 다른 비문들을 분석한 결과 그곳이 강당임을 명확히 할 수 있었다.
따라서 현재 부석사 무량수전을 금당으로 규정하고 의상의 화엄사상 혹은 화엄계 불상 운운하는 이런저런 설들을 제기하였지만, 근본적인 문제의 오류로 인해 이러한 설들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특히 무량수전 동쪽의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을 다른 곳에서 가져왔다는 황당무개한 설들도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으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금속탐지기라도 있어야 겠다. 오늘은 철로 된 그 무언가를 발견했다. 아직 무어라 장담할 수없지만 분명한 것은 '鐵제'유물이라는 사실. 조용한 시간에 수습을 해보아야겠다.
아......부석사 발굴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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