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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하버드대 간판이 만든 승려스타 혜민, 승복은 데코레이션이었다

by taeshik.kim 2020.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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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스님 "크게 반성하고, 중다운 삶 살겠다"
송고시간 2020-12-03 16:59 
양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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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스님 "크게 반성하고, 중다운 삶 살겠다" | 연합뉴스

혜민스님 "크게 반성하고, 중다운 삶 살겠다", 양정우기자, 문화뉴스 (송고시간 2020-12-03 16:59)

www.yna.co.kr

 

승려라 해서 꼭 석가모니 가르침에 충실하리오? 속세와 마찬가지라, 우리가 이상으로 그리는 그런 이상형 스님이 있는가 하면 개차반을 방불하는 스님도 없을 순 없다. 비단 불교교단만이 아니요, 여타 종교교단에서도 그 성직자로 분류하는 사람들을 보면 거개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숫자가 많을수록 개차판 성직자 또한 많아질 수밖에 없다. 

 

내가 항용 말하듯이 좋은 스님, 좋은 목사, 좋은 신부는 없다. 좋은 사람이 우연히 승려일 뿐이고, 목사일 뿐이고, 신부일 뿐이다. 다시 말해 그 좋은 사람은 성직자가 되건 교수가 되건, 기자가 되건, 정치인이 되건 좋을 수밖에 없지, 그가 성직자라서 성직자다운 것은 아니다. 이것이 종교의 비극이라 나는 누누히 말했다. 

 

자본주의에 최적화한 승려스타 혜민

 

혜민스님...저 양반은 조금은 독특한 면모를 보이거니와, 인정하기 싫건 말건 화려한 학벌과 화려한 외모를 발판으로 이른바 출세가도 성공가도를 달린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미국 국적이라는데, 영어도 잘 한다는데, 우리가 부러워 할 만한 모든 것, 혹은 상당 부분을 장착한 성직스타다. 

 

이건 역사를 통털어 비슷한 현상이 감지되거니와, 불교가 시종하고 일관해서 정권 혹은 권력의 탄압을 받았음이 분명한 조선시대에는 전반적인 승려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으니, 이런저런 여러 좋은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 승려가 되는 길이 실상은 원천 봉쇄된 까닭이다. 널리 알려졌듯이 율곡 이이는 젊은시절 엄마 죽음에 타격을 받고는 출가하기까지 했지만 이내 환속하고 말았으니, 환속 뒤에도, 당대에도, 그리고 죽어서도 수백년간이나 줄곧 "저 놈은 중이었다"는 비아냥을 얼마나 들었는지를 상기하면 조선시대 불교가 처한 혹독한 상황을 짐작한다. 그에 대한 율곡의 반응 역시 재미있는데, 환속 이래 불교를 혹독히 비판하는 것으로 전력을 감추고자 하거나, 혹은 감쇄하고자 그 자신 무진무진 애를 썼다. 

 

그런 조선시대에 유일하게 스타 스님들이 등장하는 시기가 있으니, 바로 조선중기 때다. 이때 서산대사 휴정과 사명대사 유정과 같은 걸출한 스타스님이 등장하거니와, 공교롭게도 이들은 조선왕조 500년간 유일한 불교황금기를 구가한 그 시대가 합법으로 배출한 지식인 스님인 까닭이다. 이들은 명종시대 불교왕국 부흥을 꿈꾼 일세의 여걸 문정왕후文定王后가 배출한 스타들이다. 

 

외국인 승려스타였던 현각 

 

국교가 불교인 고려, 신라시대에도 그 무수한 스님 중에 왜 개차반이 없었겠는가? 천지였다. 그런 타락한 스님들을 뒤로하고 언제나 교단 우두머리 자리를 차지한 스님들은 가문 학력 다 짱짱한 유력자들이었다. 원광법사? 그는 당대 최고의 스타였고, 당대 최고 가문 출신이었으며, 의상법사? 그 또한 아버지가 당대 최고 권력자였다. 원효만 해도 그저그런 가문 출신 같지만, 그 뿌리가 그랬을지는 몰라도 그 선조가 그 유명한 설월랑 설화랑이라, 이미 그 시대에 당대 최고 가문을 향해 돌진하는 중이었다.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 그는 왕의 정식 아들이었고, 위로 세 형은 모조리 왕이었다. 김부식...그 당대 최고 가문의 형제들 중 한 명은 자발로 출가해 자발로 승려가 되었으니, 그런 가문 출신자들이 여타 하릴없이 승려가 된 이들과는 현격한 차이를 빚을 수밖에 없다. 

 

근자 안좋은 일로 거푸 입방아에 오른 저 혜민스님은 조선시대 내내 탄압받는 처지였던 불교계 유산이 여전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에서 겨우 벗어나 기재개를 켜기 시작하는 시대에 화려하게 등장한 대각국사 의천이다. 그 이전에 이른바 SKY로 대표하는 몇몇 이른바 고학력 출신자들이 연이어 출가했다 해서 화제가 되었거니와, 그런 시대를 지나자 그는 다름 아닌 미국 하버드...이 말에 우리는 껌뻑 죽는다...라는 간판을 달고는 화려하게 한국불교계에 등장했다. 더구나 얼굴까지 미끈하니 이른바 팬덤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은가? 

 

혜민

 

이번 사태 와중에 그와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마찰과 화해라는 코드를 연출한 현각은 또 다른 의미에서 스타였다. 그는 아예 파란눈이었고, 학력 역시 같은 하버드였던가 그럴 것이다. 그런 그를 한국불교계는 잘 써 먹었고, 그 자신 역시 그런 역할에 초창기에는 어느 정도 만족하거나 타협했던 듯하다. 그러다가 한국불교계에서는, 특히 조계종에서는 저와 같은 외국승려는 데코레이션이 지나지 않는다며 박차고 나갔지만 말이다. 

 

현각이 자발로 나가기나 했지, 헤민은 너무나 번영을 구가했다. 접때 말했지만, 나는 저런 행보가 너무나 위태위태하게 보였다. 무엇보다 그의 강연, 그의 책을 슬쩍슬쩍 훑어보기는 했는데, 약장사에 다름 아니었다. 너무나 얄팍했고, 너무나 천박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 최적화한 승려스타였다. 부와 명성을 구가했으니, 그에게 승복은 데코레이션에 지나지 않았다. 

 

부디 이번 위기를 발판 삼아 어느 시점이 지나서는 아! 진짜 스님이다, 하면 쳐다볼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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