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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서기 2000년은 나에겐 발굴보고서와의 전투였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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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이 있다. 유행이 있다. 풍납토성 문제가 겨우 안정되기 시작하면서 이후 나는 또 다른 사투를 벌였다. 다름 아닌 미간 발굴보고서와의 싸움이었다.

그 주된 침공 대상은 국립박물관과 대학박물관이었다. 이 친구들 주특기가 몇십 년 지난 발굴보고서를 계속 미간 상태로 두었다는 점이었다. 천지사방 발굴만 하고 보고서 안 낸 데가 수두룩 빽빽했다. 내가 짜증을 냈다.

왜 안 내냐 물으면, 맨날 하는 말이 똑같아서 "제대로 연구가 안 돼서.."라는 말이었다. 연구가 안 된 상태에서 섣불리 보고서를 낼 수 없다는 거였다. 물론 예산이 없어서 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애초 보고서 예산은 누가 어디다 말아쳐드셨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1979년 4∼5월 국립박물관에 의한 경주 조양동유적 발굴

 



더 웃긴 건 문화재청. 보고서 안 낸 기관과 교수들 다 고발하고 문화재 현장엔 얼씬도 못 하게 해야 했는데, 그에 대한 처벌규정을 마련하지 아니해서, 결국은 그렇게 보고서도 안 낸 교수들이 문화재위원 해쳐먹게 하고 각종 자문위원으로 불러들였다. 이 제도를 강제화 실효화하고자 하는 초창기에는 미간 발굴보고서 현황을 당시 발굴책임자 이름과 더불어 문화재청에다가 공시하더니, 것도 이내 흐지부지하고 말았다. 

보고서 미간에서 국립박물관이 악명 높았다. 이 친구들, 창원 다호리 유적이며 경주 조양동이며 하는 중요한 유적 파 놓고도 제대로 보고서를 낸 데가 없었다.

국립박물관이 이러니 대학박물관은 더 처참했다. 이 친구들 중에 발굴보고서 안 낸 데가 수두룩빽빽했다. 암사동? 대학박물관협회인가 조인해서 발굴했는데 제대로 보고서 낸 데가 한 군데였고 나머진 다 떼 쳐먹었다.

 

 

경주 조양동 60호분

 



그리하여 틈날 때마다 나는 열나 조졌다. 마침 이 문제를 문화재청 역시 심각히 받아들였다. 2001년인가? 마침내 문화재청이 칼을 뺐다. 발굴조사 완료 뒤 2년 내 발굴보고서 발간. 사문화한 이 규정을 근거로 이를 강제로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다만, 그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었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 철퇴에 걸려 국립박물관도 피해가지 못했다. 2001년 이후 그 옛날 악명 높은 발굴보고서가 우후죽순처럼 나오게 된 이유다. 허약하기 짝이 없는 조양동 보고서도 그래서 그나마 나왔다. 다호리는 그리 파제끼고도 정식 보고서 하나 없이 고고학지에 진전 보고한 게 전부였다가 튀어나왔다.

이 과정에서 나로서는 적지 않은 충돌이 있었다. 죽은 경남대 이상길 교수. 나름 고고학계선 곧은 말 그런 대로 많이 한다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까닭에 이 양반 내가 존경해마지 않고 참으로 친한 사람이었는데, 이 양반도 이 발굴보고서 미간 문제에 걸렸다.

 

 

1993년 경남대박물관이 조사한 창원 덕천리 고인돌묘

 



창원 덕천리 발굴보고서를 10년이 지나도록 안 낸 것이다. 계속 내라고 협박을 내가 했다. 당신이 털어내야 한다고 틈만 나면 을렀다. 왜 안 내느냐 따졌다. 한 번은 경남대박물관에 갈 일이 있어 그에서 수북한 유물들이 있기에 뭐냐 물으니 덕천리 유물이랬다. 그걸 또 내가 못 참았다.  

고고학 정의 그토록 외치기 전에 당신이 해야 할 일부터 하라고 따졌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적에 들려오는 말 중에 덕천리 보고서 미간 문제로 고민했다는 말도 있었다. (추기..실은 다른 문제였다.) 낸다 낸다 얼버무리더니 기어이 안 내고 영영 떠나갔다.

(2017. 12. 5)

그에 대한 당시 내 보충 글

한데 더 웃긴 건 이렇게 해서 마지못해 발굴보고서가 나오기는 했는데......경주 조양동 발굴보고서 함 봐라. 38호분이 가장 중요한데, 그 기술 분량이 1쪽인가 2쪽인가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이리 쓰니 내가 다 한 것처럼 들릴 테지만 그에 티끌 하나 보탰단 뜻으로 받아주기 바란다.이 발굴보고서 발간 문제는 나는 조선고고학일백년래대사건으로 부른다.

그래서 감히 한국고고학 백년을 나는 김태식 이전과 이후 두 시기로 나눈다. 니들이 내가 꼴도 보기 싫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그리 자리매김한다. 니미럴.

***

그래도 못 낸다 버팅기던 대학박물관들이 기어이 올해는 국민세금 왕창 받아가서 2000년 이전 미등록 유물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이중지원이다. 마땅히, 그리고 일찍이 냈어야 할 보고서를 지들이 어영부영 차일피일 미루다가 못 낸 것을 왜 국민세금으로 지원한단 말인가? 

한 놈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태한 데 대한 부끄러움도, 반성도 없다. 헛소리만 찍찍 해댄다. 내가 아니라 선배들이 했고 우린 모른다는 말만 찍찍해댄다. 후안무치한 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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